녀석은 지금 중1 성장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공부'란 단어를 내가 녀석에게 건네기 시작하면서 우리 사이는 급격하게 변했다. 녀석은 원래 '알아서 하는' 스타일이었고, 나 역시도 크게 불안하지 않게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다른 아이들처럼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학교 공부를 제법 따라가 줬고 본인도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아 보였다. 해마다 학기 초에 치르는 진단 평가는 유일한 평가 자료였는데 별문제 없이 치러줬다.
학원을 다니지 않겠다는 녀석을 충분히 지지해줬다.
"○○, 학원 다니지 않아도 충분히 혼자서 할 수 있어~
중학교도 마찬가지야. 스스로 넌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거야~"
가끔 학교에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 때면 집에서 혼자서 책을 펴는 녀석을 보고 소위 말하는 "자기 주도 학습"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그 기대감은 무럭무럭 자라 어느새 통제권을 벗어나버렸다. 문제는 잘하리라 여겨졌던 상황에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발생했다. 기대와 다른 행동을 보이는 녀석에게 실망감이 찾아든 것이다. 내게는 너무도 낯선 감정, 실망감..! 특히 녀석을 향한 실망감이라니...그토록 믿어 의심치 않았던 녀석이었는데...
중학교 입학을 앞둔 시점 녀석은 친구들과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고 그에 비례해 나의 잔소리(?)는 잦아졌다. 녀석은 "알아서 하겠다"는 말을 반복했고 그에 대해 내가 몇 마디 건네면서부터 녀석은 입이 아닌 표정과 눈빛으로 그 거부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 낯선 시간을 난 감당하기 힘들었다. 어찌 대처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여기저기 책도 찾아보고 글도 찾아 읽어보고 동영상도 보기도 하고 속풀이 글도 써보기도 하고... 주변 지인들에게 속 얘기를 해보기도 하고... 무엇을 해도 해소가 되지 않았다. 녀석이 제자리로 돌아오길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 힘들었다. '사춘기'란 시기의 특성으로 단순히 받아들이기엔 너무 억울했다. 나와 너 사이에 그런 까칠한 녀석이 자리한다 해도 어느 선을 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내가 예상했던 선을 넘어서는 반응에 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정도 되니 공부가 문제가 아니었다. 녀석과의 변화된 거리감이 날 더 힘들게 했다. 더불어 아이의 심리 상태가 불안해 보여 나까지 불안해졌다. 일단 '공부' 이야기를 줄이자고 다짐했다. 정말로 '다짐'이 필요한 일이었다. 쉽지 않았지만 노력했다. 그런다고 당장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다. 녀석과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불편감이 가시지 않았다. 내 인생에 이런 인간관계를, 그것도 내 아들과 맺게 되다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루하루 버텨내는 시간이 흘렀다. 좋아하는 게임을 같이 하며 한마디 건네 보기도 하고, 친구 이야기를 물으며 잠깐 말을 섞어 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맘스터치의 햄버거를 가끔 들이밀거나 피자, 치킨으로 유인해서 말을 붙여보기도 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대화였지만 예전처럼 다정하고 따뜻한 기운이 없어진 대화는 그저 상처로 남을 뿐이었다.
며칠 전에는 언제나 맛있다고 말해주던 반찬에도 "맛없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맛이 좀 없더라도 이리 적나라하게 이야기할 녀석이 아니었는데...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무미건조한 답변이 너무 서글펐다.
어제저녁에도 좋아하는 돈가스를 준비했다고 하자 작은 아이는 당장 먹겠다고 한 반면 녀석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아빠 오면 같이 먹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평소의 반만 먹고 그만 먹겠단다. 평온한 듯 평온하지 않은 시간을 깬 것은 저녁 시간 이후의 시간이었다.
늘 밥 먹는 속도가 우리와 다른 녀석은 혼자 남아 밥을 먹고 있었고 난 한마디라도 섞어보려 옆에서 미친 척 질문을 던졌다.
"○○, 넌 같은 반에 좋아하는 여학생 없어?"
"없는데요"
"그럼 다른 반에는?"
"없는데요"
지독히도 딱딱한 답변이지만 굴하지 않고 대화를 계속 이어간다.
"우쭈는 좋아하는 여자친구 있대~"
"우쭈야, 맞지? ♤♤♤, 맞지?"
"아닌데요. ♤♤♤은 그냥 친구"
"그럼 좋아하는 애가 같은 반이야?"
"다른 반요~"
"아~~ 다른 반이었구나~!!"
이 상황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작은 아이의 폰이 울리면서 전화를 건 친구와의 대화가 살짝 들린다.
"야, 너 좋아하는 애 있어?"
친구에게 물으며 공부방으로 들어가는 작은 아이를 우리는 서로 같이 바라보며 웃!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공감의 웃음이었다! 녀석과 같은 맘이었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거친 시간을 보내왔다.
'이상하다.
녀석이 오늘 저녁 잘 웃는다.
무슨 일이지?'
내게도 묻는 말에 바로바로 대답해 준다.
이상한 눈빛으로 무표정하던 얼굴이 바뀌었다.
이 틈을 타고 또 다시 한마디 더 보태어 본다.
"○○, 엄마가 낮에 니 운동화 빠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고맙다고 말해줘~"
"고마워요~"
엎드려 절 받기라도 받아먹고 싶었다. 힘이 빠진 나긋한 목소리는 내 마음을 순식간에 무장해제시켰다. 사르르 무언가 녹아내렸다. 한마디 더 보태 본다. 자꾸만 말하고 싶다.
"○○. 엄마가 운동화 끈 매어 놓을 테니까 마무리 맺음은 네가 신어보고 니 발에 맞게 조정해서 묶어~"
"네~"
설거지를 하며 녀석에게 또 말을 붙인다.
"야, 너. 갑자기 왜 엄마한테 친절해졌어?"
"전 똑같은데요~"
똑.같.다.고?
너는 정말 모르는 거야?
정말 몰랐으면 좋겠다.
그 건조했던 말투와 표정..
나만 기억하는 거로 남겨두자.
너에겐 불편한 찌꺼기로 남아있지 않길 바란다.
엄만 어제 순식간에 사라지는 경험을 했어.
오늘부터 우리 1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