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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이 된 기분

사교육 현장에 있습니다

by 날마다 하루살이

기말고사가 오늘로써 끝이 난다. 두 개의 중학교에 나눠 다니고 있는 나의 학생들은 힘겨운 시험 기간을 보냈다. 유난히 공부를 잘하는 한 녀석은 일찌감치 진도를 마치고 다른 과목 시험 공부하라고 두어 주 전부터 오지 않아도 된다고 일러주었다. 스스로 공부가 가능한 아이는 굳이 학원이라는 시스템에 발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오히려 학원 시간에 맞추느라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활용하지 못할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이미 완벽하게 공부한 수학 말고 다른 과목에 시간을 할애하고 싶을 때 수학 학원 시간은 걸림돌일 뿐일테니 말이다.


그동안 내게 오는 학생들은 1:1로만 수업을 진행하기에 시험 기간이 되면 탄력적으로 수업 시간을 운영하였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 수업은 미리 끝내놓고 시험 기간 임박해서는 공부가 어려운 아이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주는 식이었다. 그런데 최근 몇 해 동안 내게 온 아이들 대부분은 공부가 어려운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른 학원에서 반편성을 받지 못한 아이도 있고, 학원에서 속된 말로 잘려서 오거나 1:1 과외를 권유받아 오게 된 케이스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요 며칠 두 개 중학교 시험을 치르면서 나의 시간표도 빼곡하게 채워졌다. 엊그제는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에너지를 써버려 수업 중에 잠시 브레이크 타임을 내가 외쳐야 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수없이(진짜.. 열 번 스무 번) 반복을 해야 겨우 하나 깨우치는 아이들에게 진도는 고속 열차 같이 느껴질 것이다. 그렇게 힘겹게 한 발 한 발 겨우 쫓아와서는 뒤돌아보면 잊어버린 것들 투성이다. 시험 날짜가 다가오면 몰랐던 것들이나 심화적인 문제를 다룬다는 계획은 애초에 세우기도 힘들다. 시험범위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죄다 점검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만 남을 뿐이다. 미리 공부해도 어차피 잊어버릴 것이니까 최대한 시험 기간 임박해서 모두를 총정리해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시기이다.


애쓰고 노력하는 만큼 성과로 나와주면 좋으련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 결과를 얻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문제는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부모님들의 자세이다. 아이들의 노력과 능력에 상관없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아이들을 다그치게 되는 그리하여 아이는 더 기가 죽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어제도 한 아이가 오늘 있을 수학 시험을 위한 마지막 점검을 위해 7시에 들어왔다. 유난히 계산에 속도가 붙지 않는 아이다.

"선생님 어떡하죠. 이번에 수학 90점 못 받으면 아빠가 과외 다 끊어버린다고 협박했어요."

우스갯소리로 '협박'이란 단어를 골랐지만 그건 단지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과학 시험을 망치고 수학 공부를 하러 온 그 아이는 어제 공부하는 시간 내내 쉬운 계산도 못하고 있었다. 심리적으로 너무나 위축되어 있었다. 바라보는 내 속도 타들어갔다.


내일이 시험인데 이렇게 밖에 풀지 못하다니...

○○아, 힘을 내...


난이도 있는 문제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문제들만 체크해도 제자리걸음뿐이었던 시간.. 겨우 걸음마시켜 놨는데 시험 날짜가 코앞이다. 마지막에 전력질주를 해야 하는데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 눈치다. 한 문제 한 문제 힘겹게 겨우 시험 범위를 훑은 시간은 2시간 30분이다. 뒤에 학생이 기다리고 있어서 더는 시간을 낼 수도 없는 상황이다. 뒤에 온 학생 상태도 마찬가지다. 학습량이 누적되지 않고 계속 리셋이 되니 점검, 점검, 또 점검이다.


아마도 좋은 결과가 나오지 못할 거 같은 예감이 든다. 문제는 어제 들려준 학생 아빠의 말이다. 아이에게는 공부 독려의 뜻으로 한 말이겠지만, 아이에게는 지독한 부담감으로 내게도 마찬가지의 협박으로 들리는 멘트였다. 성적 올려주지 못하면 학원 바꾸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


한때 인기 있는 수학 쌤으로 이 좁은 곳에서 아이들과 만날 때만 해도 이런 부담은 없었다. 하지만 요즘 곳곳에 세워진 학원 간판들을 보면 학원 쇼핑하는 학부모들에게 무언의 협박을 받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나의 노력과 아이의 능력이 잘 조화를 이루어 좋은 성과를 이룬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공부하는 도중에 그만두고 다른 학원으로 옮기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지는 요즘엔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골치 아팠는데 잘 됐다.. 싶어 지면 좋겠지만 내겐 생계가 달린 일이니 그리 가벼이 치부할 사안이 되지도 못한다. 내가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최선을 다하는 이유이다.


오전 시험일정을 마치고 톡을 보내올 세 명의 아이들에게 어떤 소식이 날아올지 조마조마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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