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 아니지만
오전마다 나가는 산책길. 오늘은 오랜만에 작은 아이 등교와 맞춰서 발을 뗐다. 오후에 비 소식이 있어서 조금이라도 빨리 다녀오고자 했음도 있었고, 오랜만에 아침 몸상태가 가벼운 이유도 있었다.
계단을 한 두 발 내려오는데 계단 한쪽 구석에 작은 봉지가 보인다. 살짝 열어보니 요구르트가 가지런히 담겨 있다.
'아~~~!'
누군지 알 거 같다. 근처 기름집 할머니가 분명했다. 어제 산책 나가는 길에 소주병 모아둔 것을 한 봉지 가져다 문 닫힌 가게 앞에 두고 왔는데, 그걸 받아보시고 우리 집에 답례로 이걸 두고 가셨음이 분명하다. 내가 가져다 놓은 것을 당연히 눈치채신 것이다.
가끔 소주병을 모아서 할머니 기름집에 가져다 드리면 그리 고마워하실 수가 없다. 기름이며 고춧가루, 참깨를 나는 마트에서 사지 않는다. 할머니 기름집, 그 허름한 가게에서 사다 먹는다. 마트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고소하고 가격도 싸게 해 주시니 나로선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언젠가 우연히 우리 집 남자가 명절 때 한 번 빈병을 모아다 드린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 가끔 빈병이 모이면 가져다 드렸다. 그러다가 이 남자가 한동안 막걸리에 빠지는 바람에 빈병을 가져다 드리는 것이 뜸해지자, 어느 날 기름을 사러 갔더니 할머니께서 빈병을 한참 찾으시더니 겨우 찾아 기름을 담아주시며,
"집에한테 병개 좀 사야 되겠어~"
라고 하신다.
"아니에요.. 모이면 또 가져다 드릴게요~"
매번 기름값도 깎아주시고 가끔 떡도 주시고 애들 용돈도 쥐어주시던 손길이 죄송해서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언젠가는 금방 뽑은 가래떡을 가져다주시며 문 앞에 서서 나를 부르시더니,
"다리가 아파서 계단 올라오는데 죽을 뻔했네~"
라고 하셨다.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으신 마음이 전해져 따뜻했다.
아마 오늘도 힘겹게 계단을 올라오셨다 다시 그 길을 내려가셨으리라. 요구르트 한 봉지는 그 이상의 마음을 내게 전해주었다.
아침 운동 다녀와 당장 할머니 가게로 향했다.
"할머니, 요구르트.. 할머니 맞으시죠~"
"응.. 그거.. 우리 딸이 어제 사다 준 건데 내가 아침에 일찍 가져다 놨어~"
"아이고.. 감사해요~~~"
"다음에라도 문 앞에 뭐 있으면 내가 가져다 놓은 걸로 알고 있어~"
언젠가 자꾸 전화번호를 물으셔서 뭘 자꾸 주실까 봐 일부러 알려드리지 않았는데, 할머니를 어렵게 발걸음 하시게 한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를 닮으신 할머니.
알록달록 몸빼 바지에 항상 갖가지 모자를 꼭 눌러쓰시는 특유의 패션. 지날 때 보면 잠시도 쉬시지 않고 소일을 하시는 모습.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내가 '이제 참기름, 들기름 어디서 사야 하나..'를 걱정하는 날이 아주 멀리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