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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것과 요즘 것

by 날마다 하루살이

고등학교 때였다. 한창 이쁜 것이 눈에 들어오던 때였다. 친구가 입은 메리야스가 살짝 보였는데 레이스가 참 이쁘다고 생각했다. 내가 입는 메리야스랑은 다른 느낌의 레이스를 봤다. 동네에 선물 가게가 새로 생겼는데 친구들 생일이 되면 두세 군데 팬시점과 선물가게를 돌아다니며 이쁘고 아기자기한 선물을 고르는 재미가 있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온통 파스텔톤 아니면 깔끔하면서 고급진 디자인의 소품들이었다.


그런 내 취향과는 상관없이 어느 날 엄마는 내 이불이라며 새 이불을 방에 들여주셨다. 한창 이쁜 것이 눈에 들어오던 17세 소녀의 눈엔 곰돌이가 유치해 보이기만 했다. 좋아하는 프릴 장식이 둘러져 있었지만 곰돌이 패턴은 꺼림칙했다. 하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엄마가 날 위해 특별히 근처 이불 가게에서 주문 제작한 이불이었기 때문이다.


이불은 면소재가 어찌나 짱짱한지 여태껏 우리 집 여름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붕~ 띄워서 아이들을 덮어 가두기 놀이를 하면 '또~ 또~'를 외치는 신나는 놀잇감이 되었고, 남편이랑 양쪽에 나란히 잡고 서서 아이를 태워주는 그네가 되기도 했었다.


감수성 예민한 나이에 유치해 보였던 그 이불이 진가를 발휘하는 건 세월이 지나도 쉬이 낡지 않는 최상의 소재로 만들어진 탓이리라. 면 100%를 찾기 어려운 요즘 이불과 달리 순면으로 만들어져 몸에 닿는 촉감이 유난히 좋다. 요즘처럼 뜨거운 여름에 덮고 있어도 뽀송한 순면 100%인 것이다. 게다가 내 나이가 50이 넘은 지 한참 되었으니 이 이불의 나이를 따지고 들자면 35세가 훌쩍 넘는 나이인 셈이다. 아직도 쓸만하니 몇 해만 쓰면 갈아야 하는 요즘 나오는 신소재 이불과 그 품질을 논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기술은 더욱 발전하여 여러 신소재가 개발되지만 경제 논리가 가미된 기술 개발은 아마도 적당한 시기에 교체를 바라는 기업의 상술이 더해지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옛날에는 귤망도 지금처럼 부스러기가 떨어지지 않았고, 내 낡은 기억 속 고무장갑 교체 시기도 요즘처럼 짧지 않았던 거 같다. 무엇보다 낡고 해진 이불 교체 시기가 다가와 새 이불을 사야 하는 지금 상황을 생각하면 옛 것이 그립지 않을 수 없다. 어디에든 들이대는 경제 논리가 그리 반갑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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