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쉬워지는 레시피

의심보다 일단 선택을 하기로 했어요

by 날마다 하루살이

어제는 저녁을 제육볶음으로 정했다. 원래는 고기에 상추쌈을 곁들이지 않았었다. 야채를 즐기지 않는 남편과 아직 어렸던 아이들은 극도로 야채를 싫어했다. 게다가 나 또한 고기는 순수한 고기맛을 느끼는 것을 좋아했기에 어쩌다 삼겹살을 먹을 때조차도 고기 한입에 상추쌈에 파채만 따로 싸서 먹는 따로 쌈 방식을 좋아했고, 양념이 가미된 제육볶음이나 소불고기, 양념 목살 구이를 먹을 때면 양념 맛을 음미하며 고기의 씹는 맛을 즐겼었다.


그러던 내가 얼마 전부터 당조절에 신경 쓰느라 식단에 규칙을 정하여 먹게 되었다. TV에서 주워들은 식사법이라 해서 야채-단백질-탄수화물 순으로 식단을 꾸미기 시작한 이후로 야채를 새롭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양념 고기에도 상추쌈을 곁들이기 시작했고 남편과 특히 큰아이가 쌈을 먹는 모습에 신이 나서 상추를 사기 시작했다. 내 새끼 맛나게 먹는 모습에 이렇게 흥이 오를 줄은 몰랐다.


고기를 재워두고 다른 마트로 가서 상추를 샀다. 몇 걸음 더 하는 수고를 보태면 좀 더 신선한 야채를 구입할 수 있다. 마트에 들어서 야채 코너로 돌가가는 길목에 시식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뭐지?

뭐야~~ 내가 좋아하는 콩물이네~~


"한 번 드셔보세요~"

머뭇거리는 내게

"안 사셔도 돼요~"

얼마나 편안한 유혹인가!

장난감처럼 조그만 종이컵에 콩물을 담아 건네주신다. 한 모금 마셨는데


뭐야~~ 이게 이런 맛이 난다구?


"물에 타서 드시기만 하면 돼요.

콩국수 해 드셔도 되구요~"

"이거 진짜 물에만 탄 거 맞아요?"

"네, 보여드릴까요?

미숫가루처럼 그냥 타서 드시면 돼요"

매대 한쪽에 거품기가 담긴 콩물 그릇이 보인다. 설명대로 그리 간단한 방법으로 이렇게 만족스러운 맛을 경험할 수 있다면 기꺼이 주머니를 풀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가격도 세일기간이어 상당히 착했다.


당장 한 봉지를 집어 들었다.

그러곤 저녁 먹은 후 남편에게 오늘 야참은 콩국수라고 미리 선언을 해놓았다. 귀찮아서 하기 싫어질까 봐 미리 말을 해둔 것이다.


저녁까지 먹고 뒤늦게 들어온 큰 아이와 남편을 위해 면을 삶았다. 적당히 물을 잡고 문제의 콩물을 만들었다. 스푼, 두 스푼, 세 스푼...


잘 안 녹으면 어쩌지?

생각보다 맛이 별로면 어쩌지?


모든 것은 기우일 뿐이었다! 신세계였다. 살짝 단맛이 풍겨 나오는 콩물이 너무 맛있었다. 살짝 맛을 보고 콩가루 세 스푼과 소금을 첨가해 좀더 걸쭉하게 농도를 조절했다. 냉장고에 잠시 넣어두고 면을 삶았다. 신바람이 나서 밤 9시가 넘은 그 시간에 면을 삶는데도 하나 귀찮지가 않았다. 이걸 남편과 큰 아이에게 맛 보일 생각에 신이 났다. 마지막으로 오이를 채 썰어 올려주었다.


으음~~~~!

남편이 괜찮음을 표현하는 특유의 반응이 나왔다.

그럼, 너는?

"○○, 어때?"

"맛있어요~!!"

저녁도 먹고 와서 별생각 없으니 맛만 보겠다던 녀석이 국물까지 쭈욱 들이켰다. 그 모습에 가슴이 환해졌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평화로운 행복감인지 모르겠다. 이 단순한 일상이 이리 행복할 일인가 싶을 정도였다. 바삐 돌아가는 하루하루 스케줄.. 그저 끼니는 내게 처리해야 하는 일거리였다. 저녁 먹고 치우고,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나면 녹초가 되어 늘 챙겨줘야 하는 남편의 야참 타임이 귀찮기만 했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시간의 여유와 새로운 메뉴 앞에서 난 무장해제되었다. 가장 기뻤던 것은 녀석이 맛나게 먹는 모습이었다. 별 표현이 없는 녀석의 이 정도 액션은 아주 커다란 충족감을 안겨주었다. 자식이 그런 존재인가 보다. 공부, 공부.. 하던 마음에 미안함도 생겼다.


"이 정도면 굳이 밖에서 안 먹어도 되겠어~!"


남편의 마지막 말로 평가는 이미 끝이다. 남편과 큰아이가 콩국수를 맛나게 먹는 한쪽 옆에서 난 톡을 하나 올렸다. 언니와 동생에게도 유익한 정보가 될 거 같았다.

좋은 것은 나누면 배가 된다.

좋은 것을 나누고픈 상대는 가족이란 이름을 갖고 있다.

오늘 마트에 가서 한 봉지를 더 샀다. 아마도 가까운 시일 내에 언니가 놀러오지 않을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옛 것과 요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