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때면 우리 4남매가 모두 모여 외가로 향했다. 큰 외숙모, 큰외삼촌께 인사를 드리러 다녀오던 그 길은 우리가 결혼을 하고 난 뒤에도 계속되었다.
외가에 가면 언제나 환하게 우리를 맞아주시는 외숙모가 계셨고, 외숙모께서 차려 주시는 상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괜찮다고 해도 언제나 상부터 펴시던 우리 외숙모. 외가에 가면 맛난 오징어 전을 맛볼 수 있어서 좋았다. 차려주시던 음식들은 환대의 마음을 가득 담고 있었다. 따뜻하고 감사했다.
외숙모께서는 중풍으로 누워 계신 엄마를 위해 따로 한 봉지씩 담아 주셨는데 지금 내가 스스로 부쳐보니 전 한 봉지는 대단한 정성을 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외가에서 돌아와 엄마께 맛 보여 드리면 내 맘이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한 번은 명절이 되기 전에 방문을 했던 날이었나 보다. 왜 명절 전에 방문하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맛난 오징어 전을 부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작은 외숙모를 비롯해 오빠의 언니들, 주변 친척분들까지 둘러앉아 전 부치시는 틈에서 그 전의 반죽 상태를 우연히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 행운이었다. 나도 해 볼 수 있겠는데?라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이런 걸 "보고 배운다"라고 하나보다.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슬쩍 눈으로 반죽의 질감을 머릿속에 넣어두었다.
그 뒤로 나는 가끔 집에서 만들어 먹었고, 넉넉히 만들어두었다가 고마움을 표해야 할 때나 집에 오는 손님들 가는 길에 한 봉지씩 손에 들려보냈다.
"○○이 엄마, 이거 어떻게 만드는 거예요~"
"담에 시간 날 때 우리 집에서 같이 만들어 봐요~~"
집에서 요리강습(?)도 열어보고 내게 기분 좋은 추억을 안겨준 요리이기도 하다.
오늘 오전.. 기온이 35로 오를 것이라는 예보를 폰으로 확인한 날이지만 난 오늘 선택을 했다. 오랜만에 오전 시간이 여유롭고 체력도 뒷받침해 주는, 게다가 맘에서 무언가 하고 싶은 욕구가 딱 맞아떨어지는 날이 흔치 않다는 걸 알기에 때를 놓치면 안 되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난 행동으로 옮길 준비가 되어 있다.
느타리는 어제저녁 미리 데쳐두었고, 오징어와 깻잎만 사서 섞으면 된다. 청양고추를 더하면 풍미가 더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깻잎으로 대체했고 맛살은 당으로 인한 식단 조절 이후 첨가물을 생각해 빼버렸다. 느타리, 오징어, 깻잎.. 단 세 가지만 넣은 오징어 전! 계란물 살짝 입혀( 아니 그냥 바르는 정도) 부쳐내기만 하면 된다.
햇볕이 강력해지기 전에 마무리하고 오후 일정을 기다린다. 오늘 왠지 큰일을 해낸 사람처럼 뿌듯하다.
부치는 반죽 사이 슬쩍 튀어나오는 오징어 조각을 큰 아이 입에 넣어줘 본다. 이게 엄마 맘인가 보다. 가장 맛있을 순간에 먹여주고 싶은 마음. 그 마음 가늠도 못하는 녀석은 딱 한 번 받아먹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야들야들 어린 오징어가 오늘따라 유난히 맛있다. 하지만 금방 식사를 마친 녀석은 흥미가 없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엄마가 김치 담그며 건네주던 김치 한 조각, 삶은 돼지고기 썰다가 하나 집어 초고추장 찍어 입에 넣어주시던 그 고기 한 점이 생각난다. 엄마도 그땐 이런 맘이었겠구나... 나도 그땐 우리 엄마 맘을 몰랐단다. 너도 지금은 엄마 맘을 모르더라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