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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하루살이

집 앞 마트에 가면 정육코너에서는 남편이, 야채코너에서는 아내가 일을 하는 부부를 만날 수 있다. 그녀는 이주 여성으로 베트남에서 시집을 온 여성이다.


몇 해전 마트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잠깐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 물론 한 오지랖 하는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단둘이 탄 엘리베이터에서 그것도 얼굴을 아는 사이로 공유한 공간이 침묵으로 채워지는 것이 난 좀 견디기 힘들다.

"한국말을 참 잘하세요~"로 시작된 이야기로 그녀가 본국에서는 학교 선생님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도 매번 마주칠 때마다 상냥하게 인사를 주고받곤 한다. 그녀의 과장되지 않은 친절은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국적을 떠나서 인간 본연의 모습은 가릴 수 없나 보다. 그녀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인간미를 난 좋아하게 되었다.


저녁 산책을 루틴으로 하던 지난여름에는 같이 운동 다니는 우리 부부를 보며 "같이 다니니까 보기 좋아요~"라는 인사를 건네주기도 하였다. "우리 아저씨는..." 절레절레로 이어진 그 말속에는 무뚝뚝한 정육 코너 아저씨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피부색이 다르지만 여자 맘은 다 똑같구나.. 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 사근사근 다정한 남편은 아니어도 속 깊고 우직한 남편일 것이다. 순박해 보이면서 쑥스러워하시는 순수함이 정육 코너 아저씨의 매력이다.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잘 정착한 그녀는 아들 친구 엄마들(한국인)과 모임도 만들어서 친분을 유지하고 있으며, 가끔 모여서 여행도 가는 사이라고 내게 얘기해 준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다.


오며 가며 찍은 눈도장으로 치면 친한 친구라 해도 될 정도로 수많은 마주침이 있었다. 늘 한결같은 눈짓과 인사를 건네는 그녀가 나는 좋다.


오늘은 원래 오이를 사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오이 가격이 반값이어서

"오이가 왜 이렇게 싸지?"

라고 지나는 말로 한마디 했는데,

나더러 하나 가져가서 계산하고 오면 덤으로 하나 더 주겠다고 살짝 일러 준다. 오늘 들어온 상품인데 색이 좀 안 좋아서 싸게 파는 거라는 귀띔을 해주었다.

그래서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고 약속대로 오이 진열대로 다시 갔더니, 덤으로 2개를 더 주려고 준비해 둔 것이 아닌가. 난 하나만 더 가져가겠다고 하고 하나만 고맙게 받아왔다. 내가 그녀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겠지? 그녀의 호의가 고맙다.


아들이 사교육도 안 받고 공부해서 나름 잘해왔는데, 지난 수능에서 원하는 성적을 얻지 못해 아쉬워한다며 이번에 재수를 한다고 들었다. 아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기를 기원해 본다. 무뚝뚝한 정육 코너의 아저씨 얼굴이 조금 더 환해지면 그녀가 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마트에 다녀오면 기분이 좋은 이유가 있다. 그녀가 내게 따뜻함을 덤으로 나눠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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