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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고기를 먹은 다음 날에는

순두부찌개

by 날마다 하루살이

대학 때 학교 앞 식당 중에 순두부찌개를 맛나게 끓여 파는 가게가 있었다. 보글보글 작은 뚝배기에 담긴 빨갛고 뜨거운 그 국물이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대학 졸업 후 그 맛에 이끌려 휴게소에서나 병원 식당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순간 순두부찌개를 한동안 골랐었다. 하지만 그 식당의 독보적인 맛을 따라가기엔 뭔가 부족했다.


큰 아이가 내가 끓여주지도 않았는데 급식에서 먹어보더니 순두부찌개를 좋아하게 되었다. 녀석이 5학년즈음이었나 TV에서 백종원 님께서 요린이들을 위한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큰 아이가 따라 해 보고 싶다는 것이다. 좋다! 레시피를 잘 받아 적어 놓고는 시도해 보았다.

'요린이도 할 수 있단 말이지..'

"○○, 엄마가 혹시 순서 틀릴 수 있으니까 옆에 서 있어~"

녀석을 옆에 세워 두고 시작된 요리가 완성되었다. 과연 맛이 어땠을까... 흐음... 적당히 먹을만한 정도? 녀석은 맛있다며 두 그릇을 먹었지만 내가 경험한 학교 앞 최고의 순두부찌개에는 못 미치는 아쉬움이 있었다. 레시피 대로 한다 해도 미세한 타이밍 조절이나 재료의 양, 무엇보다 요리사의 감각 없이는 제대로 된 맛을 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이 정도로는 들인 공에 비해 허무한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자꾸만 먹고 싶은데 어떡하랴. 더구나 내 새끼가 좋아하는 메뉴인데... 언젠가 다시 도전해 보마 하고는 시도하기가 꺼려졌다.


그러던 어느 날 큰 아이 친구 엄마랑 우연히 같이 마트에 갈 일이 있었는데, 매대에 진열된 여러 "찌개 양념"들을 보며 내가 지나가는 말로 "이런 거 맛이 나려나...? "라고 말을 건네 본 적이 있다. 그때 그녀는 자기는 순두부찌개를 그것으로 해 먹는다고 일러 주었다. 아... 이런 상품이 자꾸 개발되는 이유가 있구나. 소비하는 사람이 있었어.


어느 날 문득 불고기를 먹은 다음날 머릿속이 번쩍였다! 불고기 전골도 있는데 불고기로 국물을 내면 순두부찌개가 괜찮을 거 같은 생각이 났다. 당장 남은 불고기에 물을 붓고 국물이 우러날 때까지 끓였다. 그리곤 문제의 찌개 양념을 부어 보았다. 뭐지? 이 냄새~ 진짜 순두부찌개 냄새가 나잖아~! 어렵게 이리저리 레시피 비교해 보며 맛이 날까 안 날까 조마조마하며 요리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요걸로 결정했다. 그 뒤론 불고기를 잔뜩 해서 저녁에 먹고 남은 것으로 순두부찌개를 끓이게 되었다. 남은 불고기를 일단 가위로 쫑쫑 썰고 물 부어 끓인다. 양파를 추가하고 파, 마늘과 만능 요리템 참치액도 넣어 본다. 뭔가 아쉬울 땐 설탕을 추가하니 맛이 좋아지는 듯도 보인다. 양념을 두 봉지 넣어 볼까? 순두부를 두 봉지? 여러 생각들이 모여 두세 번의 시행착오 끝에 오늘의 찌개가 완성되었다. 으음~~~ 지금까지 끓인 것 중 최고~!!

어제 소고기 찌개 끓이고 남은 미나리를 쫑쫑 썰어 넣었더니, 오~~~ 괜찮네! 소고기와 미나리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구나 싶다.


오전 내 불 앞에서 이것저것 해 놓았다. 작은 아이를 위한 복숭아 통조림을 해두었고 남편과 큰 아이가 좋아하는 오징어 전도 부쳐 두었다.

마지막으로 완성한 순두부찌개까지. 오늘 왠지 뿌듯하다. 아직도 남은 체력에 감사한 날이다.


간편함, 마다할 이유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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