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이쁜 내 친구가 있다. ○○! 거래하는 신협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친구이다. 대학 때부터 돈이 생기면 집 앞에 가장 가까운 금융기관이었던 신협을 찾았다. 언제부턴가 그곳에 반가운 얼굴이 앉아있었다.
난 아직 학생이었지만 그 친구는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하여 벌써 사회인이 되었던 것이다. 몰랐다. 그 친구가 실업계로 진학했단 사실. 공부도 잘했던 거 같은데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몰라도 인문계로 진학하지 않았다. 언젠가 같은 반이었을 때 말없이 얌전한 그 친구에게 내가 건넸던 말이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야, 난 네가 좋아~"
수줍게 건넸던 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 당시 난 좋아하는 친구가 생기면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곤 했었는데 그 친구에겐 말로 직접 표현했던 유일한 친구였다. 청소시간 복도에서. 그 순간이 생각난다. 그때 그 친구의 반응은 수줍음이었다.
시간이 흘러 마주한 새로운 장소에서 낯선 어색함이 자리했던 건 내가 대학생이고, 상대는 대학을 가지 못한(?) 사회인이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그 친구의 낯가리는 성향일 수도 있지만 어린 나이에 잠깐 느꼈을지도 모를 위축감이 조금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기는 돈을 들고 신협에 가면 그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따로 친분을 유지, 발전시키는 다른 만남으로 시간을 나누던 사이는 아니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우리가 신협이라는 장소에서 마주치는 일. 근무지를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며 마주침이 끊기기도 하고 다시 만나기도 하면서 그 친구와의 만남이 이어졌다. 내가 결혼 한 이후에는 더 편하게 인사할 수 있게 되었다. 신협에 들르면 두리번두리번 먼저 그 친구를 찾게 되고 편하게 일처리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내가 모르는 세계에 잘 적응해서 성장하는 친구가 멋있어 보였다. 이제는 맨 앞자리가 아닌 뒷줄에 앉아서 업무를 보는 직원이 되어 있다.
이제는 기계가 대부분의 업무를 대신해 주어 창구로 직진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기계 앞에 가더라도 친구의 자리를 한 번씩 훑어보고 처리를 한다. 자리에 있는 날이면 바쁜 와중에 어김없이 밖으로 나와서 인사 나눠주는 친구가 고마웠다. 아이들이 어릴 때 동행하면 아이들에게 용돈도 가끔 주고, 해가 바뀌는 시기가 다가오면 달력도 챙겨주었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땐 생각지도 못한 조의금도 챙겨 주었다. 너무 고마웠다. 난 가끔 빵을 하나 사서 건네주는 것으로 고마움을 표현했다.
오늘도 난 쪽문을 열고 기계로 직행하려다 슬쩍 친구의 자리를 둘러보았다. 친구가 환하게 웃어준다. 나도 따라 손을 흔들어 답례를 했다. 일을 처리하고 돌아 나올 때도 서로 눈인사를 나눴다. 업무에 방해되지 않을 만큼. 딱 그만큼만 친분을 표현했다.
오늘은 오전에 루틴으로 나가던 산책길에서 예기치 않은 제동이 발생하여 산책을 포기하고 은행일을 먼저 처리했던 터라 조금 더 먼 길을 돌아오기로 마음먹었다. 운동 겸 고개를 하나 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도착해서 보니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모르는 번호는 섣불리 통화를 먼저 누르지 않는다. 일단 문자를 보내 보고 다시 전화벨이 울리는지 기다려 본다.
"누구시죠.."
이 단순한 물음은 '당신이 보이스피싱이나 광고성 의도를 가지지 않은 대상임을 스스로 보여주세요.'란 뜻을 품고 있다.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벨이 울렸다.
"윤정아~~ 나, ○○야~"
아니.. 네가 나에게 전화를 다 하고 무슨 일이니.. 신협 업무로 고객에게 전화 돌리는 군번도 이젠 아닌데...
아까 잠시 인사만 나눈 것이 아쉬워서 전화해 봤단다.
정말 뜻밖이었다! 은행업무 외에 사적인 통화를 해본 적이 없는 친구여서 더 놀랐다.
나의 안부를 물어주는 친구. 나의 근황을 묻고 소중한 시간을 내게 할애해 준 자체가 고마웠다. 틈날 때마다 정기적으로 일부러 약속을 잡고 만나던 친구들도 이젠 거의 없는데, 내게 안부를 물어주다니...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한참을 떠들었다. 너무 바쁜 친구 붙들고 있는 건 아닌지 신경이 쓰였다. 신협에 가면 날 보며 환한 미소를 보내주는 차분하고 단정한 몸가짐을 한 내 친구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