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상담
두 녀석 학사 일정이 겹치게 되었다. 다행히 오전과 오후로 나눠서 실행할 수 있게 시간이 잘 맞았다. 오전엔 중1 큰 아이 학부모 상담, 오후엔 작은 아이 공개수업일이다. 내가 신경 쓰이는 것은 큰 아이의 상담이다. 이미 마음은 어젯밤부터 출렁인다. 어떤 내용을 질문할 것이며 나의 바람은 무엇인지 내 속사정부터 정리하는 것이 옳다.
아침 산책을 생략하고 부산한 마음을 달래며 하나씩 집안일을 클리어한다. 온통 머릿속은 큰 아이 상담 내용으로 꽉 찼다. 놓치는 일이 없도록 신경을 바짝 써야 한다. 어머님께 전화드리고, 머리부터 감는다. 머리가 마르는 사이 세탁기를 돌리고 설거지와 청소를 마치면 저녁 찬거리를 마무리하러 마트에 다녀온다. 그리곤 저녁에 간단히 조리할 수 있게 순두부찌개의 밑국물을 완성하고... 또 뭘 해야 하지?
머릿속도 부산하고 내 마음속도 부산스럽다. 무엇보다 답이 정해진 질문을 멍청하게 던져야 한다는 사실이 가장 걱정스럽다. 돌아오는 답은 뻔할 텐데.. 뻔한 질문에 뻔한 답을 들으러 이리도 신경줄을 졸라맨다.
- 선생님, 도통 집에선 공부를 안 하는데 이대로는 안 되겠죠?
이 멍청한 질문을 들고 나는 출발했다. 상대로부터 나올 수 있는 답변도 뻔할 텐데 난 다른 부탁 한 가지를 더 가슴에 품고 집을 나섰다.
- 요 녀석에게 선생님께서 자극을 줄 수 있는 좋은 말씀을 좀 부탁드립니다.
아.. 남에게 하는 부탁을 너무도 어색해하는 내가 저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을까. 누구에게는 별것도 아닌 말인데 난 용기가 필요한 힘든 말이다. 내 아이에게만. 좀 더 특별한 관심을 부탁하는 거 같은, 왠지 불편한 요구는 아닐지 걱정스러운 맘이 담겨있다.
학교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 오늘 오전 볕이 뜨거우니 천천히 걷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땀 날 것을 대비하여 천천히 걸었는데도 볕은 내 맘을 너무 몰라 준다. 평소에 하지도 않던 화장을 하고 땀으로 흘러내릴까 걱정하며 걸었다. 약속 장소에 늦지 않으려는 의지로 집을 나섰는데 시간이 남아 버스 정류장으로 들어갔다.
에어컨 바람에 땀을 식히고 다시 출발이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저기 멀리 쉬는 시간인지 아이들이 돌아다니는 모습도 보인다.
선생님은 2층 약속장소로 올라가려던 순간 내려와서 날 맞아주셨다. 학기 초에도 뵈었지만 느낌이 참 좋으신 분이다. 선생님은 먼저 내 아이에 대한 칭찬의 말씀을 꺼내놓으셨다.
- 그러게요, 선생님...
시험 결과만 보면 아무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이는데, 집에선 도통 공부를 하지 않으니 어쩌죠? 학교 수업 듣는 것이 전부이다 보니 걱정이 돼서요.
- 아, 정말요? 몰랐어요. 학원도 안 다니면서 혼자서 잘하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집에서 손 놓고 있는 상태라면 이건 문제 상황인 거죠. 제가 따로 얘기 좀 해줘야겠네요.
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먼저 꺼내기 어려운 말이었는데 선생님 입에서 너무도 감사하게 먼저 나왔다. 그런다고 달라질까 싶지만, 그래도 한번 변화는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녀석이 잘 따라주길 그리하여 내적 동기가 발현되길 기대해 본다.
상담 시간 30분! 나오자마자 확인한 시간이 그러했다. 그 짧은 시간을 위해 내가 마음 준비를 한 시간은 얼마지?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보여주는 일. 꽤나 에너지가 요구되는 일이다. 자식 일이 아니라면 이리 신경 쓰지는 않겠지. 자식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는 부모 맘을 알겠다. 무엇보다 흔쾌히 나의 요구를 받아주신 선생님께 고맙다.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 나오는데 머리가 뻑뻑하다. 얼마나 신경을 쓴 거야, 대체~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집 앞 초등학교 공개 수업 준비를 한다. 초등학교 공개 수업에 맞춰 마음 상태를 다시 고쳐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