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이 되면 해마다 자동차 보험 갱신을 요하는 알림톡을 받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안내 톡을 받았고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처리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보험이 잘 가입되었음을 통보받았다.
남은 것은 보험설계사가 보내준 보험 증권과 함께 보내주는 선물(프라이팬)을 기다렸다가 집안 한쪽에 잘 보관하면 될 일이다.
화요일(2/10) 택배 기사님의 문자를 받았다. 현관 앞에 잘 배송되었음을 알려주었다. 바로 확인할 수도 있었지만 집안일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어차피 남편이 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들고 올 테니 머릿속에서 지웠다. 정말 까맣게 지웠다.
다음 날(수요일)에는 작은 아이의 대학병원 진료 예약이 있어서 아침부터 마음 급한 날이었다. 그날의 잊지 못할 에피소드로 또 한 번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보험증권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다음 날(목요일)에도 오전부터 이어지는 과외 스케줄과 하루 일정에 신경 쓰느라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러고 나서 오늘(금요일)이다! 오늘의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은 틈날 때 은행 가서 조카들에게 줄 세뱃돈을 미리 찾아오는 것이었다. 현관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생각이 났다!
현관... 그래.. 내가 이 현관이란 곳에 용무가 있었지. 뭐지? 그래! 택배!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택배가 없다. 없는 것이 당연하지 지난 3일 동안 수없이 드나들던 현관인데 지금까지 눈에 띄지 않던 것이 지금 갑자기 보일 리가 없다.
급히 택배 알림 톡을 확인하고 택배기사님께 전화를 해봤다. 기사님 말로는 2층이라고 안 쓰여있어서 1층으로 배달한 것 같다고 했다.
우리 집 1층으로 말할 것 같으면 다이어트 관리실이다. 오며 가며 눈인사 정도 나누는 그야말로 '이웃'인 셈이다. 언젠가는 우리 집으로 잘 못 배달된 택배가 있어서 깜깜해진 시간에 확인하곤 바로 가져다 드린 적이 있는 그런 사이란 말이다. 새로 가게를 오픈한 뒤로 난 사장님의 얼굴도 몰랐었는데 먼저 인사를 건네 주셔서 알게 된 그런 사이..
혹시나 해서 아래층에 문을 두드려보았다. 아무도 안 계신다. 문도 잠겨있지 않고 TV도 켜져 있다. 내부 구조를 몰라 큰소리로 불러보았지만 아무 기척이 없다. 문도 열려있고 멀리 나가신 모양은 아닌 듯싶어 잠시 후에 다시 들르겠노라 하고 돌아 나왔다. 은행일을 보고 마트도 다녀오고... 그 사이 그 보험 증권이 잘못 배송된 것이 아닌 더 큰 오류 사항이라면 어쩌나.. 보험회사에서는 재발급이 가능한 건가.. 아니면 어떤 방법을 취할 수 있을까.. 두근두근 여러 생각들로 머릿속은 복잡하고 더불어 가슴도 쿵쾅거린다.
한참 지난 듯하여 다시 내려가 보았다.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면 남겨두고 올 쪽지를 써서 들고 내려갔다. 현관문 열고 바로 앞에 놓인 발매트 위에 쪽지를 내려놓고 나오려는 순간 문 앞에 놓인 종이 쓰레기 담긴 더미가 보였다.
'혹시.. 저기에..?'
남의 집에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이것저것 뒤지는 모양새가 좀 결례라고 생각했지만 그 종이더미 속에서 누우런 서류봉투를 발견한 이상 그냥 나갈 수 없었다. 서류 봉투 겉면을 보니 "H.. 현대해상" 낯익은 문구가 눈에 들어왔고 그 누우런 봉투 안을 뒤져보니, 다행히 내가 찾던 보험증서가 들어있었다! 선명하게 찍힌 남편 이름!
얼마나 다행인지! 이 종이 쓰레기를 모으지 않고 바로 그날 (화요일) 처분했다면 영영 잃어버릴 뻔한 것이 아닌가! 그 옆을 보니 프라이팬 박스도 함께 버려져있었다. 갑자기 화가 났다. 본인 물건도 아닌데 오픈을 하다니! 그것도 지난번에 내가 배송 사고를 확인하고 바로 잡는 일도 있었는데 본인은 왜 수취본인이 아닌 택배를 오픈한 것일까.
잃어버릴 뻔한 중요한 서류를 찾아 안심하는 일로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며 가며 공손하게 인사하던 그 몸집 뒤로 다른 면을 보게 되었다. 앞으로 마주할 때 내가 어떤 표정을 짓게 될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나, 이런 불편한 감정 싫은데...
서너 차례 더 아래층을 다녀왔지만 만나지 못했다. 혹시 쓰레기를 내놓을 지 몰라 보험 증권은 챙겨왔다.
남은 것은 지금 이 상황을 설명드리고 프라이팬을 찾아오는 일. 아이들에게 얘길하니 큰 아이가 말한다.
"엄마, 이따 아빠 오면 따지러 가세요~!"
아빠 올 때까지 참지를 못하겠다. 그리고 이 정도는 엄마가 처리해도 된단다. 메모를 다시 남기고 올라왔다.
좀더 믿을 수 있고 따뜻한 세상을 운운할 여력이 없다. 남의 일이라고 너무 무심한 것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