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에 둘째 아이 친구가 산다. 그 아이의 엄마는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데. 그 소리가 듣기 좋다. 예전에 내가 가르쳤던 학생과 결혼하여 아들 셋을 낳았으니, 난 나이차이가 많은 "언니"가 되었다.
어느 날 서로 인사를 나누고 왕래하기 시작했는데, 첨엔 "선생님~"이라고 부르다가 어느 날인가 "언니~"로 호칭이 바뀌었다. 어색하게 들렸던 호칭이 이젠 자연스럽게 느껴질 만큼 가까워졌다. 물론 그 집 아이들의 수학 공부를 봐주기 시작하면서 더 가까워지긴 했다.(나는 수학 개인 교습자이다)
그 집안은 시댁도 친정도 모두 농사를 짓는 집안이어서 가까이 살면서 같이 농사일을 하기에 늘 먹거리가 풍족하다.
처음 가져다준 것이 상추였는데 첨 먹어보는 식감에 깜짝 놀랐다.
"언니, 이거 드셔 보세요. 샐러드용이라 괜찮을 거예요"
'로메인'이라는 품종을 그때 처음 알았다. 보통의 상추와 달리 씹는 식감이 풍성했고 크기도 상당했다. 마트에서도 눈에 띄어 조금씩 사 오곤 하지만 이 정도 크기와 식감은 찾아볼 수 없다.
그 뒤로 샤인머스켓이나 옥수수, 고추 등등... 갖가지 먹거리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답례로 카레나 돈가스, 잡채등을 일부러 많이 해서 조금씩 나눠주곤 했다. 서로 오가는 횟수도 잦아지고 집에 가져다주는 것들의 종류도 더 다양해졌다.
두세 번 그것들을 받아 들었을 때였나 보다. 카카오스토리에 글을 올린 날이다. 해 질 녘 그날 방금 수확한 것들을 받아 들고는 눈물이 날 뻔했다. 고마워서가 아니라 너무 슬퍼서... 내가 가질 수 없는 또 하나의 결핍이었기에...
아빤 일찍 돌아가시고 엄만 대학 때부터 뇌졸중으로 쓰러지셔 병상에 누워계셨으니 고아 아닌 고아로 살아온 내게 남들이 누리는 부모 그늘은 그렇게 내겐 슬픈 것이었다.
오늘도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나물을 큰 애 손에 들려 보냈다. 내 손에 들어왔을 땐 저녁 시간에 맞춰 금세 볶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상태였다. 맛난 양념 냄새 사이로 고마움이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