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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하루살이 Jul 15. 2024

기름집 할머니

불고기를 재우려는데 참기름이 똑 떨어졌다. 그래도 상관없다. 몇 발자국만 걸으면 집 근처에 방앗간이 있으니 금방 다녀오면 될 일이다. 식용유나 휴지, 라면 등등 다른 생필품들은 떨어질 때를 대비해 미리 준비를 해두지만 참기름은 그럴 필요가 없다. 그래도 이렇게 미리 준비 안 해두긴 첨이다.

참기름 살 요량으로 얼른 집을 나섰다. 기름집 앞에서 할머니께서 뭔가 정리하고 계신 모습이 보인다. 너무 반가웠다. 가끔은 할머니께서 자릴 비우실 때가 있는데 어찌나 불편하던지... 부재중일 때 하루 이틀 더 기다리거나 근처 다른 기름집으로 가야 할 때면 새삼 할머니의 고마움이 느껴졌다. 가격도 싸고 다정하게 잘 대해주시기 때문이다.

한 번은 할머니께서 허리 수술로 병원에 장기간 입원하셨었는데 잠깐의 불편함이 어찌나 크게 다가오던지 할머니께서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오시기를 기다렸다.


추석이 다가오던 어느 날엔 옆에 남자가 소주병을 한 상자 들고 나선다. 할머니께 명절 선물 드린단다. 언젠가 밤에 소주병 찾으러 돌아다니시는 것을 봤다며, 자기가 반주로 한 병씩 즐기는 소주병을 모았다가 가져다 드린 것이다.  그 뒤로도 서너 차례 더 가져다 드렸는데 우린 더 많은 답례를 받아오곤 했다. 설날이 가까워지면 금방 뽑은 가래떡도 얻어먹고 봄이면 쑥떡도 얻어먹고 산책길에 아이들에게 용돈도 주시곤 하셨다.

 

오늘도 참기름을 사러 갔다. 늘 하시는 말씀이,

"집에는 만원만 줘~" 하신다.

요 몇 해동안 물가가 얼마나 빠르게 오르고 있는지 알고 있고, 다른 집에서 더 비싼 가격에 사 본 기억이 있어서 그 가격이 어느 정도 인지 알고 있으니 그냥 갈 수가 없어 오늘은 2천 원을 더 챙겼다. 집에 천 원짜리 현금이 없어 동전으로 준비한 좀 우스꽝스러운 꼴이 됐지만 일단 챙겨갔다. 그런데 난 또 도로 들고 오고 말았다.

그냥 손에 쥐어드리고 돌아 나오는데 내 뒤를 쫓아, 머리가 하얗고 자그마신 분이 뛰어 오시는 걸 보고 그냥 올 수가 없었다.

"애들 과자라도 사줘~~"

민망한 손이 되어버렸다.

오늘도 산책길에 기름집 앞을 지났다.

"서방, 소주병 또 준비해야겠어."

옆에 남자에게 말했다.

그러그러한 일이 또 있었노라 했더니,

"언뜻 보면 우리 장모님이랑도 닮으셨어~"

한다.

나도 언젠가부터 하던 생각이었는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엄마의 정을 엄마를 닮으신 할머니께 느낀다.


내가 기름병이 예쁜 기름집이나 마트에서 참기름을 사지 않는 이유가 있다. 참기름 아끼지 말고 열심히 먹고 또 사러 가야지. 내가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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