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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하루살이 Jul 16. 2024

애착

살다 보니 내 맘에 쏙 드는 옷을 만나는 것도 쉽지만은 않음을 알게 된다. 가격이 비싸고 어느 브랜드의 옷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평소에 자꾸자꾸 손이 가는 그야말로 '즐겨' 입는 옷이 최고다.


난 봄부터 초여름까지 그러니까 아주 뜨거워 밤 잠 설치는 무더위가 오기 전까지는 7부 길이의 옷을 즐겨 입는다. 카라가 있는 스타일도 싫고 브이 네크라인도 별다. 라운드 네크라인에 5부도 아닌 7부 정도 길이에 질 좋은 순면이 좋다. 몸에 닿는 느낌이 거부감이 없고 그 정도 길이면 좀 덥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좋은 면 소재를 만나면 아주 쾌적한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된다.


몇 해 전에 인터넷으로 구입한 티셔츠가 너무(별표 100개쯤 줘도 아깝지 않을) 맘에 들었다.  흰색과 베이지색 두 개를 구입했는데 정말이지 내 맘에 쏙 들었다. 여리여리한 느낌이 들게 잘 재단된 라인이 입을 때마다 기분이 너무 좋아지는 것이다. 게다가 끝처리를 물결 모양으로 정리한 것도 너무 맘에 들었다. 이런 세상에 없을 기회를 놓칠 세라 한 달쯤 뒤에 안 되겠다 싶어 같은 사이트로 방문해 같은 제품으로 두장을 더 주문했다. (지금 생각하면 네 장을 한꺼번에 주문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근데 이게 웬일! 처음 주문할 때랑 모니터의 광고 사진도 가격도 똑같았었는데 막상 도착한 티셔츠는 재질도 길이감도 다른 완전히 다른 옷을 받은 느낌이었다.


새로이 받은 티셔츠는 5부 정도 길이감에 소재는 면에 다른 것이 섞인 느낌으로 좀 더 짱짱한 소재로 업그레이드한 듯해 보였지만 착용감에서 떨어졌다. 몸에 끼는 느낌에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느낌.

기분이 너무 안 좋았다. 무엇보다 "속았구나"라는 느낌이 들어서 더 좋지 않았다. 옷이 맘에 들고 안 들고는 별개의 문제였다. 만약 제품의 소재 및 사양이 달라졌으면 고지했어야 한다. 그다음 선택은 소비자의 몫이다. 하지만 이건 선택권을 빼앗긴 것이란 말이다. 사기를 당한 기분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 새로이 도착한 옷들은 아직 옷장 속에 있고 난 내가 애착을 가진 옷들에만 손이 갔다. 당연히 무수한 세탁과 일상생활에서 버텨야 했던 마찰 들에 서서히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작은 구멍이었을 때 꿰매 입기도 한두 번이지 더 이상의 마법은 있을 수가 없었다. 새로이 맘에 드는 옷을 발견하기 전까지 버리기 힘들 거 같았다. 이별의 순간을 알고 있음에도 잡은 손 놓지 못하는 오래된 연인 같았다.


하지만 곧 안녕해야겠지. 이번까지만 입자.

안녕~


[그동안 날 기쁘게 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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