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

by 날마다 하루살이

살다 보니 내 맘에 쏙 드는 옷을 만나는 것도 쉽지만은 않음을 알게 된다. 가격이 비싸고 어느 브랜드의 옷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평소에 자꾸자꾸 손이 가는 그야말로 '즐겨' 입는 옷이 최고다.


난 봄부터 초여름까지 그러니까 아주 뜨거워 밤 잠 설치는 무더위가 오기 전까지는 7부 길이의 옷을 즐겨 입는다. 카라가 있는 스타일도 싫고 브이 네크라인도 별로다. 라운드 네크라인에 5부도 아닌 7부 정도 길이에 질 좋은 순면이 좋다. 몸에 닿는 느낌이 거부감이 없고 그 정도 길이면 좀 덥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좋은 면 소재를 만나면 아주 쾌적한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된다.


몇 해 전에 인터넷으로 구입한 티셔츠가 너무(별표 100개쯤 줘도 아깝지 않을) 맘에 들었다. 흰색과 베이지색 두 개를 구입했는데 정말이지 내 맘에 쏙 들었다. 여리여리한 느낌이 들게 잘 재단된 라인이 입을 때마다 기분이 너무 좋아지는 것이다. 게다가 끝처리를 물결 모양으로 정리한 것도 너무 맘에 들었다. 이런 세상에 없을 기회를 놓칠 세라 한 달쯤 뒤에 안 되겠다 싶어 같은 사이트로 방문해 같은 제품으로 두장을 더 주문했다. (지금 생각하면 네 장을 한꺼번에 주문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근데 이게 웬일! 처음 주문할 때랑 모니터의 광고 사진도 가격도 다 똑같았었는데 막상 도착한 티셔츠는 재질도 길이감도 다른 완전히 다른 옷을 받은 느낌이었다.


새로이 받은 티셔츠는 5부 정도 길이감에 소재는 면에 다른 것이 섞인 느낌으로 좀 더 짱짱한 소재로 업그레이드한 듯해 보였지만 착용감에서 떨어졌다. 몸에 좀 끼는 느낌에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느낌.

기분이 너무 안 좋았다. 무엇보다 "속았구나"라는 느낌이 들어서 더 좋지 않았다. 옷이 맘에 들고 안 들고는 별개의 문제였다. 만약 제품의 소재 및 사양이 달라졌으면 고지했어야 한다. 그다음 선택은 소비자의 몫이다. 하지만 이건 선택권을 빼앗긴 것이란 말이다. 사기를 당한 기분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 새로이 도착한 옷들은 아직 옷장 속에 있고 난 내가 애착을 가진 옷들에만 손이 갔다. 당연히 무수한 세탁과 일상생활에서 버텨야 했던 마찰 들에 서서히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작은 구멍이었을 때 꿰매 입기도 한두 번이지 더 이상의 마법은 있을 수가 없었다. 새로이 맘에 드는 옷을 발견하기 전까지 버리기 힘들 거 같았다. 이별의 순간을 알고 있음에도 잡은 손 놓지 못하는 오래된 연인 같았다.


하지만 곧 안녕해야겠지. 이번까지만 입자.

안녕~


[그동안 날 기쁘게 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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