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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하루살이 Jul 17. 2024

보이지 않는 손길

오늘은 해가 반짝! 오전인데도 벌써 뜨겁게 달아올랐다. 며칠 전 내리던 폭우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써 이리 잊어버렸나.


평소에 잘 전화도 않으시는 시어머님께서도 뉴스를 보시곤 전화를 주셨다. 우리 사는 지역이 뉴스에서 이슈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뉴스도 보고 안내 문자도 수십 통을 받았다. 하룻밤 사이에! 다행히 우리가 사는 집 근처에는 뉴스에서 보이는 것처럼 많은 피해는 없었다.


조금만 벗어나 산책길로 들어서니 곳곳이 예전에 비가 왔던 모습과는 좀 다름이 느껴졌다. 배수로도 막힌 것이 보이고, 다리 밑에 걸려있는 나뭇가지며 폭우에 쓸려내려온 더미의 규모도 다르고 무엇보다 아무렇지 않던 도로 가에도 진흙이 덮여있었다.

집안에만 있을 땐 남일 같던 폭우의 흔적이 을 나서자 내 발밑에 펼쳐졌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비가 좀 잦아진 틈을 타서 잠깐 마트로 향하는데 발밑이 영 찝찝하다. 진흙으로 덮인 길가를 잠깐 지나 둑으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올라서기만 하면 되는데 그 짧은 거리가 진흙으로 덮이니 운동화가 갯벌에 빠지듯 푹푹 빠지는 것이 영 느낌이 안 좋다. 미끌~ 진득~


'우리 집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근데 이런 길가의 진흙은 누가 안 치워주나?'

'만약에 안 치우면 내가라도 나서야 하나, 한동안 불편을 감수해야 하나'

 

그 짧은 거리를 통과하며 별의별 생각들이 스친다. 일단 내가 불편하다는 일차적인 반응이다.


다음날에도 운동을 하려고 길을 나섰다. 비는 그쳤지만 아직 땅은 다 마르지 않은 곳 투성이다.

'아, 오늘은 조금 말랐는데도 이 정도네'

'다른 사람이 이미 걸은 발자국 따라가야겠다.'


불편감을 어쩔 수 없이 견디며 진흙길을 건너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의 시멘트를 밟고서야 안심이다.

딱딱한 시멘트를 밟고 나니 어릴 적 놀던 할머니댁이 생각났다. 마당 가장자리를 따라 돌 징검다리를 둘러 두셨었는데, 그 당시 비 오는 날에 유용하게 쓰였던 것이리라. 조상들의 지혜를 엿보았다.


다음날이었다. 이제 날씨는 화창해졌다. 언제 비가 왔었냐는 식이다.  운동하러 길을 나섰는데 멀리서 뭔가 벅벅 긁어대는 소리가 들린다. 근처에서 공사하나 보다 하며 몇 걸음 더 걸으니 열심히 작업하시는 현장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 어제까지만 해도 불편함으로 어기적거리며 걸었던 그 길이 정리되는 소리였다. 맘속에서 작은 탄성 소리가 들렸다.  작은 포클레인과 트럭 그리고 커다란 빗자루를 드신 아저씨 두 분이 보였다. 언제부터 작업을 시작하셨는지 이미 여러 군데 진흙더미가 모아져 있었다.

고마웠다. 내가 불편하지 않기 위해 저분들의 노고가 있었구나. 물론 누군가의 민원으로 시작된 일 일 수도, 군에서 비 온 뒤 하던 도로 재정비 작업으로 늘 있었던 일일 수도 있다. 그동안은 모르고 무심히 지나갔었다.  하지만 내가 직접 피부로 뼈저리게 불편감을 겪은 후에 바라본 지금의 상황은 이전과는 다르다. 그 불편함이 해소된 데에는 또 다른 고마운 분들의 알 수 없는 노고 가 있었음에 새삼 고맙다. 공익이란 이런 것이구나.


갑자기 수해 피해 지역을 TV에서 보던 장면들이 다르게 스친다. 어찌 그 막막한 심정을 다잡고 끝도 없어 보이는 일들을 처리해 나가셨을까. 감히 상상도 못 할 일들이다.

다시 한번 많은 분들의 보이지 않는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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