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꼽추 춤

아이들이 모르는 어른들의 세계

by 날마다 하루살이

어릴 적 아빠는 참 사교적인 분이셨나보다. 우린 시장에서 가게를 하며 살고 있었는데 가끔 아빠 따라 관광차를 타고 놀러 다니던 일이 떠오른다. 어느 날엔 이웃에 사는 육촌이자 내 친구인 ○○이 까지 함께 관광차를 탔으니 아빠가 무척 다정하신 분이긴 했나 보다. 그때 그 친구는 본인의 엄마 아빠도 아닌 우리 아빠와 날 따라나섰으니.


아빤 내가 중학교 입학하자마자 돌아가셨는데 아무래도 주변 분들에게 인심을 얻고 계셨던 모양이다. 외가에 놀러 가면 우리 아빠를 '동네 사우(사위의 사투리인 모양)'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를 종종 전해 들었다. 아빠의 행적을 다른 분들께 전해 듣는 것은 좀 색다른 기분이다. 나의 아빠가 그렇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내가 대학을 근처 큰 도시로 통학하고 있을 때였다. 난 기차를 타고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도시로 대학을 다녔는데 역에 내리고 좀 걷다 보니 어느 아저씨가 내게 반갑게 뛰어와 말을 건넸다.

"혹시,○○이 딸 아녀?"

아빠가 돌아가신 지 6년쯤 되는 시점이고 그 당시 난 훨씬 더 자란 모습이었을 텐데 날 알아보시고 인사를 해 주신 것이다. 감사하기도 하고 아빠에 대한 뜻 모를 존경심이 느껴졌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날 불러 세우시다니... 게다가 날 바라보시던 눈빛도 기억난다. 아빠 없이 자란 친구 딸을 향한 안타까움이 포함된 따뜻한 눈빛이었다.


난 어려서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빤 주변에서 인기 쟁이였나 보다. 그 당시 관광차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흥이 초고조에 이르렀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른들은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셨다. 그 좁은 차 안에서. 그 분위기의 중심엔 아빠가 있었다. 아빤 등에 무언가 잔뜩 집어넣고 꼽추 흉내를 내시며 춤을 추셨는데 모든 사람들이 손뼉 치며 좋아했었다.

문제는 나였다. 그 당시 5학년이었던 어린 소녀의 눈에 그 모습은 마치 아빠가 놀림을 당하는 상황으로 비친 것이다. 마치 진짜 꼽추로 놀림받는 양. 집에 도착해 난 눈물 바람으로 차에서 내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곤 다시는 아빠랑 관광버스를 타지 않았던 거 같다.

얼마 전 큰 아이의 일기 한편을 본 기억이 갑자기 겹쳐 떠오른다. 외숙모 장례식에 다녀온 날의 일기였다. 그러고 보니 큰 아이 나이도 일기 쓴 해에 5학년이었구나. 궁금하여 좀 읽어봤는데 내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외사촌 언니는 내게 브런치 작가에 도전해 보라고 권유했고 난 내가 그 정도 글 쓰는 실력이 될 것 같지 않아 사양했던 상황이었다. 언니는 그래도 계속 권유를 멈추지 않았고 난 한번 생각해 보겠다고 상황을 마무리했었다. 우리 큰 아이 눈에는 사촌 언니가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졌는지 "불편했다"라고 적혀 있었다.


언니는 내게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 권유한 것이지 우리 아이가 생각하는 것처럼 과하게 불편한 강요를 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아빠가 속한 어른들의 놀이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에겐 낯선 어른들의 세계.


아이들 눈에는 자신이 겪은 만큼의 크기로만 비치겠지. 아직은 더 배우고 겪고 느끼고 깨닫고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내가 겪는 것 또한 전부가 아닐진대 어찌 다른 이의 입장을 다 알 수 있을까. 아직은 어리니 좀 더 몸과 마음이 자란 후 즐겁게 이야기 나누는 때가 오길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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