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층에 사시는 친정 고모네는 여러 과일 농사를 지으시는데 그중 하나가 복숭아이다. 여기 충북 영동은 과일이 정말 맛있다. 한 번은 우리 시어머님께서 아파트단지에 과일 파는 트럭이 왔는데, '영동 복숭아'라고 해서 두 번 생각도 않고 사 드셨다는 얘길 하신 적도 있다. 우리가 여름휴가 때 시댁에 사 들고 가는 복숭아를 맛보신 후의 일이다. 물론 우리 고모네 복숭아 맛은 아니라고 하셨다.
우리 고모네 복숭아는 특별히 더 맛있다. 고모는 포장하고 남는 복숭아를 계속 우리 집으로 조금씩 올려 보내주시는데 공짜로 그 맛난 복숭아를 실컷 먹으니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근데 말이 조금씩이지 그 양은 우리 가족이 다 소화시키기엔 과분한 양이다.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과 과일을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되는 당뇨 예비환자인 나.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통조림도 만들고 쨈도 만들어 냉장고를 채우는 것이다.냉장고로도 갈 곳을 잃으면 냉동실에도 보내지는데 냉동시켜 살짝 녹으면 슬러시처럼 되어 작은 아이가 아주 좋아한다.
다행히 입이 짧아 걱정이었던 큰 아이가 어릴 때 잘 먹었다. 만들 때 좀 번거롭지만 기분 좋게 만들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이제 작은 아이가 복숭아 통조림 킬러가 되셨다. 만들 때면 신이 난다. 꽁꽁 얼려 두면 여름에야 당연하고 겨울철 건조한 그 계절에 먹는 맛이 또 색다르다. 녀석은 일 년 내내 남발이다.
"엄마 복숭아 통조림 있어?"
"다 먹었지~"
"그럼 언제 먹을 수 있어?"
난 오늘 아침 올해 들어 벌써 세 번째로 복숭아를 끓였다.복숭아 껍질을 벗기고 물 조금 부어 끓이다가 설탕으로 당도와 농도만 조절하면 된다. 단순한 작업이다. 하지만 더운 날 불 앞에 있어야 하는 날엔 곤욕이 아닐 수 없고, 그 당도라는 것이 늘 한결같이 맞춘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복숭아 통조림은 결혼 후 내가 먹고 싶어서 처음 시도하게 되었다. 엄마가 끓여 주시던 것이 너무 그리워서... 엄마가 끓여서 식힌 후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어 주시면 밥 먹은 후 한 그릇 후식으로 꺼내 먹는 맛이 꿀맛이었다. 난 그 일을 복숭아가 냉장고에 있는 동안은 무슨 행사 치르듯 열심히 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우리 엄만 천재 같다. 어쩜 매번 당도가 그리 똑같았을까. 너무 달지도 심심하지도 않게 맞춘다는 것이 내가 직접 해 보니 쉬운 일만은 아니던데... 엄마의 신기함은 매번 요리할 때도 생각난다. 내가 하는 요리는 매번 들쑥날쑥 일 때가 많으니...
엄마도 이런 맘으로 복숭아를 더운 여름날, 에어컨도 없던 그 시절에 끓이셨겠지. 자식들 좋아라 할 생각에. 특히 내가 좋아했던 걸 알고 계셨을까? 지금은 안 계셔 물을 수 없지만 갑자기 궁금해진다.
오늘도 깨끗이 씻은 복숭아와 껍질 담을 용기, 과육 끓일 냄비 앞에 두고 양다리 쭉 벌려 바닥에 철푸덕 앉았다. 내 새끼가 좋아하는 탄성 소리 상상하며 오늘도 복숭아를 끓였다. 요 녀석들도 나중에 좋아하는 무언가를 먹을 때 내 생각해 줄까? 엄마 사랑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