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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하루살이 Jul 14. 2024

복숭아 통조림

여름이다. 여름은 내게 뜨거운 계절이라기보다 복숭아 끓이는 계절이다.

아래층에 사시는 친정 고모네는 여러 과일 농사를 지으시는데 그중 하나가 복숭아이다. 여기 충북 영동은 과일이 정말 맛있다. 한 번은 우리 시어머님께서 아파트단지에 과일 파는 트럭이 왔는데, '영동 복숭아'라고 해서 두 번 생각도 않고 사 드셨다는 얘길 하신 적도 있다. 우리가 여름휴가 때 시댁에 사 들고 가는 복숭아를 맛보신 후의 일이다. 물론 우리 고모네 복숭아 맛은 아니라고 하셨다.


우리 고모네 복숭아는 특별히 더 맛있다. 고모는 포장하고 남는 복숭아를 계속 우리 집으로 조금씩 올려 보내주시는데 공짜로 그 맛난 복숭아를 실컷 먹으니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근데 말이 조금씩이지 그 양은 우리 가족이 다 소화시키기엔 과분한 양이다.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과 과일을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되는 당뇨 예비환자인 나.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통조림도 만들고 쨈도 만들어 냉장고를 채우는 것이다. 냉장고로도 갈 곳을 잃으면 냉동실에도 보내지는데 냉동시켜 살짝 녹으면 슬러시처럼 되어 작은 아이가 아주 좋아한다.


다행히 입이 짧아 걱정이었던 큰 아이가 어릴 때 잘 먹었다. 만들 때 좀 번거롭지만 기분 좋게 만들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이제 작은 아이가 복숭아 통조림 킬러가 되셨다. 만들 때면 신이 난다. 꽁꽁 얼려 두면 여름에야 당연하고 겨울철 건조한 그 계절에 먹는 맛이 또 색다르다. 녀석은 일 년 내내 남발이다.

"엄마 복숭아 통조림 있어?"

"다 먹었지~"

"그럼 언제 먹을 수 있어?"


난 오늘 아침 올해 들어 벌써 세 번째로 복숭아를 끓였다. 복숭아 껍질을 벗기고 물 조금 부어 끓이다가 설탕으로 당도와 농도만 조절하면 된다. 단순한 작업이다. 하지만 더운 날 불 앞에 있어야 하는 날엔 곤욕이 아닐 수 없고, 그 당도라는 것이 늘 한결같이 맞춘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복숭아 통조림은 결혼 후 내가 먹고 싶어서 처음 시도하게 되었다. 엄마가 끓여 주시던 것이 너무 그리워서... 엄마가 끓여서 식힌 후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어 주시면 밥 먹은 후 한 그릇 후식으로 꺼내 먹는 맛이 꿀맛이었다. 난 그 일을 복숭아가 냉장고에 있는 동안은 무슨 행사 치르듯 열심히 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우리 엄만 천재 같다. 어쩜 매번 당도가 그리 똑같았을까. 너무 달지도 심심하지도 않게  맞춘다는 것이 내가 직접 해 보니 쉬운 일만은 아니던데... 엄마의 신기함은 매번 요리할 때도 생각난다. 내가 하는 요리는 매번 들쑥날쑥 일 때가 많으니...


엄마도 이런 맘으로 복숭아를 더운 여름날, 에어컨도 없던 그 시절에 끓이셨겠지. 자식들 좋아라 할 생각에. 특히 내가 좋아했던 걸 알고 계셨을까? 지금은 안 계셔 물을 수 없지만 갑자기 궁금해진다.


오늘도 깨끗이 씻은 복숭아와 껍질 담을 용기, 과육 끓일 냄비 앞에 두고 양다리 쭉 벌려 바닥에 철푸덕 앉았다. 내 새끼가 좋아하는 탄성 소리 상상하며 오늘도 복숭아를 끓였다. 요 녀석들도 나중에 좋아하는 무언가를 먹을 때 내 생각해 줄까? 엄마 사랑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내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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