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많이 변했다. 좋은 명목으로 '발전'했다고 보통은 표현한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쫓아가기가 버거울 때가 있다.
얼마 전 정수기가 고장이 났다. 냉온수 레버가 표시선 중앙 위치에서 멈추지 않고 오버해서 돌아간다. 일단 나 편하자고 정수기 코디님께 전화를 했다. 대신 수리 신청을 부탁했다. 흔쾌히 오케이 하셨다. 몇 년 전에도 이랬던 경험이 있었고 그때도 코디님께서 신청해 주셔서 잘 해결되었던 기억이 있어서 일단 전화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뒷상황이 이어지지가 않는다. 수리가 접수되었다든지 언제 방문하겠다든지 어떤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반응이 없다. 기다리다 불편함이 계속되더니 오버되는 각도가 점점 심해지는 느낌에 다시 한번 전활 해보니, 코디님 폰으로 신청이 안되니 당사자 폰으로 해야 한단다.
흐잉~ 좀 더 일찍 연락해 줬더라면 불편할 시간이 줄어들었을 텐데...
일단 정수기 고객 센터 전화번호를 받아 들고 전화를 걸었다. 나이 든 아줌마는 이런 통화 연결음이 기계음성으로 바뀌면 긴장모드다. 시키는 대로 버튼만 누르면 되는 거 아녀? 하겠지만 익숙하지 않은 것을 대할 때 느끼는 긴장감은 좀 불편하다.
여러 번 상담원 연결을 시도했지만 대기가 너무 길다.일단 다른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상담원 연결을 시도해 보지만 나 같은 사람이 많은지 연결이 쉽지 않다. 다른 선택을 해야 할 것 같다.벌써 몇 번째 통화 연결인지.. 이러다가 오늘 안에 신청할 수 있으리란 보장도 없다.
'아... 이번에도 챗봇과의 대화를 신청해 볼까?'
다른 경로를 선택해 본다.
언젠가 세탁기 수리 신청을 해내고 스스로 얼마나 감격했던가!이번에도 잘할 수 있다고 주문을 외운다. 다른 선택버튼을 눌러본다. 알림톡에 답하면 된다. 한 번 해봤다고 조금은 여유가 있다.
빠른 상담을 위한 확인 질문이 날아온다. 계약자 이름 연락처 등등 답하란다. 순간 멈칫~! 신랑 명의로 계약했는지 내 명의로 계약했는지 모르겠다. 일단 한 사람 정보를 주니 찾을 수 없다며 다시 알려 달란다. 다른 사람 정보를 주니 다른 명의여서 혼란이 왔는지 다시 정확히 보내달란다.
우이씨~ 나도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그냥 두 사람 정보를 다 넣었더니 둘 중 알아서 맞는 정보를 찾아 주었다.
'아~~ 남편 명의구나.. 기억해 둬야지~!'
불편 사항을 설명하고 채팅이 마무리되었다.
'우와~~~ 내가 이번에도 또 해낸 거야~!!'
스스로 뿌듯하다. 간단한 일 처리 하곤 무슨 쾌재냐겠지만 나이 든 아줌마에겐 그럴만한 일이니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변화하는 세상에 대고 왜 그리 빨리 질주하느냐. 난 따라가기 버겁다며 매번 투정만 부리고 있을 노릇은 아니다. 이젠 차츰 적응해야 할 것이다. 한두 번 경험이 쌓이면 익숙해지겠지. 익숙해지면 편안해지겠지. 제발 익숙해질 시간적 여유 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