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단위 작은 도시에 산다. 제일 크다면 클 수 있는 마트가 두어 곳 있는데 그중 하나가 하나로 마트다. 남편이 요즘 빠져버린 특정 막걸리를 사러 거의 매일 드나든다. 매장 직원들 얼굴이야 그쪽들도 우리 쪽도 다들 너무 익숙해진 상태다.
좁은 도시에 살다 보니 가끔 아는 얼굴과 마주칠 때가 있다. 사촌 동생도 만나고 과외하는 아이의 엄마도 만나고.. 사실 난 눈이 좋지 않아서 가까이 다가오기 전까지 못 알아차릴 수도 있는데 상대가 먼저 인사해 주면 그제서야 한 박자 늦게 인사를 하게 되니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까운 사이야 실루엣만 봐도 알 수 있지만 과외학생 엄마 같은 경우에는 미안하기도 고맙기도 한 상황이다.
인사를 간단히 나누고 지나치는 경우도 있고 친구를 만나게 되면 손이라도 한 번씩 잡고 활짝 웃는 웃음을 서로에게 보이며 반가움을 표현한다. 그럼 평온했던 마음도 살짝 들뜨고 기분이 좋아진다. 늘 반복되는 심심한 일상에 살짝 소금기가 드리워지는 느낌이다.
다정한 한 친구는 만나면 애기들 먹을 거 고르라고 하기도 한다. 난 한사코 사양하지만 그쪽의 의지가 꺾일 것 같지 않아 원래 사려던 양보다 적은 양을 손에 쥐고 그 친구의 뜻을 받아준 적도 있다. 친구 엄마를 만나 아기들 바나나를 한 다발 받아오기도 하고 여러 이야기들이 짧게 짧게 지나가는 곳이 마트이다.
한 번은 산책길에 마주치던 슈퍼 아주머니를 뵌 적이 있었는데(그러고 보니 슈퍼 주인님께서 다른 마트에 오셨구나..ㅎ) 이런 곳에서 뵈니 또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환하게 웃어주시니 기분이 또 좋아졌다.
얼마 전에는 계산대에서 앞 손님이 계산이 길어지고 있었다. 복숭아를 한 상자 사셨는데 복숭아 상자는 두고 복숭아만 봉지에 담아달라고 마트 직원에게 요구하신 것 같았다. 마트 직원분께서 건네주신 봉지에 복숭아를 담으시며 자꾸 나를 힐끔거리신다. 이상하다. 난 모르는 얼굴인데... 두세 차례 힐끔거리시더니,
"저기 시장에 딸내미 아닌가?"
하신다.
"네.. 혹시 재건 식육점 아세요?"
"알지~"
"저희 엄마를 아세요?"
"그럼~! 동생들도 다 잘 살아?"
"네~"
나를, 우리 엄마를 정확히 아시는 분 같았다.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졌다. 엄마~ 이름만 불러도 아픈 우리 엄마를 알고 계신 분을 이렇게 만나다니. 아마도 오랫동안 엄마가 뇌졸중으로 누워 계셨고 그 가운데 내가 있음을 알고 계신 분이리라.
계산을 마치고 복숭아와 다른 짐을 정리하시던 아주머니(? 할머니?)께 먼저 인사를 하고 나왔다.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처럼 푸근했다. 오랜만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