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집에서 파자마 파티에 초대받았다고 방학하기 전부터 선포를 했다. 정해진 약속 날짜가 오기를 기다린 작은 녀석이다. 엄마는 제대로 샤워도 못하는 녀석이 남의 집에서 그것도 한여름에 잔다고 하니 여러 가지가 신경 쓰였다. 하지만 당사자는 좋아라 신이 났다.
막상 날짜가 되었는데 초대한 친구가 장염이 걸려서 취소가 되었다. 방학도 중반이 지나가고 있었다. 내심 엄마 입장에서는 취소된 약속이 반가웠다. 아무거나 잘 먹는 녀석도 아니고 샤워도 해야 할 테고... 걱정거리가 살짝 지나가려던 어느 날 다시 잡은 약속 날짜를 통보했다. 바로 어제가 바로 그날이었다. 그래,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몇 가지 갈아입을 옷을 챙겨서 작은 쇼핑백에 넣어서 보내고 난 친구 엄마에게 치킨 쿠폰을 하나 보냈다. 친구들이 집에 온다 하면 여러 가지 신경 쓰일 것 같은데 흔쾌히 승낙해 좋은 자리를 허락해 준 친구 엄마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었다. 또한 내 아이가 좀 못마땅하게 굴어도 잘 봐달라는 의미도 섞여있었을 것이다. 부모가 되니 걱정도 많고 마음 쓸 일도 많다. 그 이전에는 결코 몰랐을 일들이다.
잘 놀고 있겠지만 엄마는 자꾸만 궁금하다. 저녁은 먹었는지, 샤워는 했는지, 즐겁게 잘 놀고 있는지... 가끔 톡으로 확인하고 마음을 정리한다.
오늘 아침엔 짜장밥을 먹었단다. 집에서는 면이 아니면 먹기 싫다고 하던 음식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먹었구나 싶었다. 사회생활도 배우고 좋은 기회다 싶다. 데리러 갈지를 물으니 도서관에서 놀고 집으로 '혼자서' 잘 오겠단다.혼자서는 처음 오는 길일 텐데 굳이 그렇게 하겠다니 무슨 수가 있나 보다 했다.
집에 오기로 한 시간이 다가와 전화를 하려던 찰나! 녀석의 톡이 도착했다! 곧 집에 도착한다고... 그러더니 금세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혼자 오는 길을 걱정했는데 친구 아빠가 집 근처까지 태워다 주셨단다.
휴우~ 녀석의 얼굴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놀고 온다던 교육청 도서관은 집에서 걸어서 20-30분 정도는 족히 걸리는 거리이고 한 번도 혼자서는 가본 적이 없어서 걱정되었던 것이었다. 친구 아빠가 태워주신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걱정하지 않았을 텐데...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내 맘 같진 않겠지만 좀 성향이 다른 사람을 대하면 난감할 때가 있다. 이번 친구의 부모들도 나와는 결이 좀 다른 것 같다. 나라면 가끔 집에서 아이들 노는 모습 사진으로라도 보내주고 일정을 어느 정도 공유해 주었을 텐데...안심하시라고...
아주 즐겁게 놀았는지 집에 오자마자 대낮부터 낮잠에 푹 빠지셨다. 즐겁게 놀은 흔적 같아 맘이 놓인다. 녀석이 좋았다면 엄마야 무조건 오케이다.
가져갔던 쇼핑백은 친구집에 두고 왔는지 도서관에 두고 왔는지 쫄랑쫄랑 핸드폰만 들고 들어왔다. 핸드폰 잃어버리지 않고 온 것만도 얼마나 다행인지..
이 땡볕에 난 도서관을 부랴부랴 다녀왔다.( 난 운전을 못한다) 녀석이 잠들어서 혼자 다녀왔는데 어디 어디를 돌아다녔는지 알 수없어 모조리 둘러보고는 찾지 못해 분실물 신고를 해두었다. 혹시 수거되면 연락 달라고 연락처를 남기고 왔다.친구 엄마에게도 톡을 남겼다.
나 : ○○엄마 혹시 ♤♤이 쇼핑백 (하얀색) ○○이 아빠 차에 두고 내렸는지 확인 좀 부탁드려요. 지금 당장 아니어도 괜찮아요~
○○엄마 : 안녕하세요~ 네, 집에 가면 확인해 볼게요~
나 : 네 고마워요
(이른 저녁 시간)
○○엄마 : 도서관에 놓고 왔더라고요~ 찾았어요~ 내일 아침에 둘째 돌봄 교실 데려다줄 때 전화 드릴게요~
나 : 아, 네 감사해요~~~ 도서관까지 다녀왔는데 못 찾고 그냥 왔거든요. 너무너무 고마워요~~
일정을 자세히 알려주지 않은 약간의 아쉬움이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나 혼자 생각하고 나 혼자 맘 정리한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사람마음이 이래서 간사하다고 하나 보다. 나의 기분에 기준이 맞춰져 있으니 사실관계랑은 상관없이 상황 따라 기분이 오락가락할 수 있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쉽게 뒤집어지는 것임을... 그러니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허투루 해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