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은 오리 고기야~"
"네? 저는 친구 만나러 나갈 거 같은데요?"
"언제?"
"4시쯤요. 친구들이랑 포도 축제 가려고요"
어느 때부터인가 '허락'을 구한다기보다 그냥 '통보'가 되었다. 아이의 이런 변화는 받아들이지 않으면 갈등의 요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난 내심 기쁘고 반갑다.
학기 초에 문장 완성 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친구를 많이 사귀고 싶다'는 바람이 적힌 것을 본 적이 있은 후 녀석의 고민은 나의 고민도 되어버렸다. 친구랑 과제물 이야기 말고는 통화하는 것도 거의 없고, 운동장에 축구하는 친구들 무리에도 끼지 않는 거 같고... 늘 집에서 조용히 폰만 보면서 친구 사귀는 것을 갈망하고 있었구나 싶은 생각에 마음이 아파왔다. 언젠가는 동생이 친구들과 채팅하면서 게임하는 걸 보더니 "우쭈야, 너는 왜 이렇게 친구가 많아?"라고 묻는 걸 들은 적도 있다. 간절함이 느껴져 마음이 또 시려왔다. 그런 녀석이 요즘 달라진 것이다. 표정도 밝아졌다.
초등학교 5년을 집돌이로 지내던 녀석이 6학년이 되면서부터 달라졌다. 보조 가방도 필요하다고 해서 사줬다. 외출할 때 필요하단다. 간단히 폰과 카드등을 넣고 다녀야 한단다. 예쁘게 대각선으로 어깨에 가방을 메고 나가는 모습이 이쁘다. 즐거운 기분을 품고 나가는 것이려니 생각하니 나도 덩달아 좋아서 더 에뻐 보이는 것 같다.
녀석은 웬만에선 서두르는 일이 없다. 밥도 천천히 먹고 등교준비도 세월아 네월아~~ 다른 것은 몰라도 우찌 라면을 그렇게 천천히 먹을 수 있는지. 세상에서 가장 맛없게 음식 먹기 대회가 있다면 단연코 1등 할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는 속이 탄다. 나 같은 엄마 안 만났더라면 집안에 큰소리가 끊이지 않을 스타일이다.
그런 녀석이 몇 번의 카톡을 주거니 받거니 하더니 쏜살같이 쌩~하고 가방 메고 나간다. 4시쯤 나간다고 하더니 5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순식간에 치카하고 현금과 카드 챙기고 바람같이 사라지는 것이다! 너도 서두를 때가 있긴 하구나.
친구들이 좋을 나이이다. 친구들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고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오길 바란다. 포도 축제이지만 너희들만의 축제를 즐기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