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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하루살이 Sep 02. 2024

말없이 떠난 녀석

큰 아이의 수학여행

6학년 큰 아이가 수학여행을 간다 하니 한동안 같이 설레었다. 빠뜨리고 준비하지 않도록 신경 써 주고 싶었다. 아직은 아기 같은 엄마 맘. 그런데 뒤통수를 한 대 퍽~하고 맞았다. 내 맘을 미리 들어와 읽기라도 한 듯 지난 주말 마지막 알림장에 담임 선생님의 당부 말씀이 있었다.


"아이들 수학여행 준비물 오늘내일 본인들이  챙기도록 해주세요"


아~  또 내가 잊고 있었다. 녀석은 이 정도는 충분히 스스로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을..


일요일 아침..수건이랑 속옷, 양말 몇 가지를 잘 보이는 곳에 꺼내 놓기 시작했다. 미리미리 준비했으면 하는 마음에 엄마가 움직이는 것을 보이면 따라 움직이지 않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녀석은

"그걸 왜 엄마가 챙겨요?"

라며 본인이 알아서 준비할 테니 엄마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저렇게 멋없게 뱉어버렸다.

"아니.. 접는 우산 어딨는지 모를 테니 이것만 꺼내 놓을게~"


그래. 신경 끄자. 알아서 하겠지. 녀석에게는 절대로 큰 소리 내서는 안돼. 수없이 머릿속으로 되뇌면서 오후 시간을 보냈다. 간간이 수업도 하고 운동도 다녀오고. 마트도 다녀왔다. 그런데 녀석의 준비물들은 내가 꺼내어 놓은 자리에 하루종일 그냥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진행된 상황이라면 가지고 가려던 가방을 비워둔 것뿐.


여행가방을 미리 준비해서 사두려고 했는데 본인이 그냥 책가방에 가져가겠다고 해서 여행 가방을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 그러니 책가방을 비워둔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네모 반듯한 멋진 여행 가방을 무슨 전리품이라도 되듯이 끌고 올 텐데 그거 보고도 마음이 괜찮을까 싶었지만 본인이 그러겠다 하니 난 쾌재를 불렀다. 돈도 굳은 것도 좋지만 우리 집엔 그 작은 가방 놓을 적당한 여유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녀석만 괜찮다고 하면 사지 않고 싶었는데 너무도 잘 되었다 싶었다.

 일요일 저녁을 먹을 때까지 모든 물건들은 마치 그곳이 자기 자리인 양 차지하고 나와 있었다. 난 녀석이 얼마나 간섭을 싫어하는지 알기에 그냥 지켜볼 뿐이다.


저녁을 먹고 수업을 하나 마치고 남편과 막걸리를 사러 외출을 했다. 외출했다 돌아오니 눈 앞에 굉장한 광경이 펼쳐졌다. 깔끔하게 가방 정리는 되어 있었고 녀석은 샤워까지 마치고 욕실에서 마악 나오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했지만 설레었나 보다. 녀석은 보통 이 시간에 샤워를 하지 않는다. 어떤 날엔  제 볼 일 다 보고 식구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나와 샤워하는 일도 있을 정도로 샤워 시간이 늦다. 그런 녀석이 이른 시간(9시도 전)에 샤워를 마쳤다는 것은 분명 마음의 동요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히히 설레는 녀석이  귀엽다.


월요일 아침이다. 평소보다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정리까지 마치고는 밥 달란다. 평소처럼 같이 아침을 먹고. 난 운동하러 나왔다. 감기약을 정수기 위에 꺼내놓긴 했는데 깜빡 잊을까 봐 운동 다녀와서 꼭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당부의 말을 남기고 난 모자를 쓰고 운동화를 신었다.


"○○,  엄마 운동 갔다 올게. 엄마 올 때까지 기다려~~ 먼저 가지 말구~~~"

"네~"


열심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평소와 다른 코스로  바퀴 돌고 돌아왔다. 설마 대답까지 했는데 일찍 나가겠어? 하며 현관을 들어서는 순간 녀석의 신발이 없음을 알았다. 아휴~~~~ 이 엉뚱한 녀석!

아까까지만 해도 못 일어났던 작은 아이가 치카하며 등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쭈야, 형아 벌써 갔어?"

"응~"

"아니 엄마한테 인사도 고 가면 어떡해~~~"

"댕겨오겠습니다~~하고 나갔는데요?"

그런 인사를 뜻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작은 아이는 아직 애기임에 확실하다.ㅎ


전화를 걸어 약 챙겨 갈 테니 교문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괜찮을 거 같다며 그냥 가겠다고 했다. 그럼 잘 다녀오라고 마지막 인사를 전화로 나누었다. 히잉~


오늘 아침 목이 좀 아프다고 했는데 수학여행 (2박 3일) 기간 동안 무탈하길 바라본다. 더불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스케줄을 보니 즐거울 수밖에 없겠지만, 인생 첫 수학여행이니 또 색다른 설렘과 경험으로 그 시간이 채워지길 바란다.  두 밤 자고 만나는 거야~~~



[벌써 보고 싶은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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