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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하루살이 Sep 03. 2024

핑계 있는 상차림

삶은 계란

큰 아이도 작은 아이도 우리 집 녀석들은 입이 짧다. 큰아이가 잘 먹질 않아서 걱정했던 이야기는 이제 전설이 되었다. 지금은 이것저것 잘 먹고 때론 유튜브에서 본 것을 집에서 직접 해 먹기도 하고, 먹고 싶다며 새로운 메뉴를 사달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김치찌개부터 닭개장, 올갱이국, 오징어국 등등 나도 먹지 못하는 순댓국까지 섭렵했다. 

가장 아이러니한 일은 작은 야채도 싫어하는 동생에게 먹어보라며 간섭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라면을 끓이면 다 먹고 밥까지 말아먹는 경지(?)까지 이르는 내공을 보여주신다. 많이 자란 듯하여 보고 있으면 뿌듯해진다. 몸이 자라는 만큼 몸에서 요구하는 것에 자연스레 반응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젠 큰 아이의 먹거리를 가지고 고민하는 일은 없다.


문제는 작은 아이다. 어릴 때부터 덥석 덥석 이것저것 받아 먹질 않았다. 큰아이보다 더 심하다 싶을 정도였다. 미역국도 안 먹고 가장 쉬운 반찬인 계란말이도 안 먹고 계란찜도 계란 프라이마저도 거부했다. 오로지 선택은 삶은 계란뿐. 이것이라도 먹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지경이다. 다른 요리법은 식감이 이상한지 맛이 이상한지 일단 뱉어내는 통에 괜히 혈압 올리지 말고 일단 잘 먹는 것 위주로 상을 차려주게 되었다. 치킨, 피자, 통닭, 김, 햄 등등 잘 먹는 몇 가지를 돌려 막기 할 뿐이었다.


닭도 튀김 말고 삶은 것은 먹질 않으니 아이가 먹는 것 위주로 상차림을 하든지 모든 가족이 따로 밥을 먹어야 하는 일들도 비일비재했다. 치킨을 거의 매일 먹다가 가족들이 질려서 작은 아이 혼자 먹을 수 있는 편의점치킨을 한 조각 사다가 주니 그야말로 세상 편해졌다. 밥 먹기 싫다고 하다가도 편의점 치킨을 사주겠다고 하면 금세 먹겠다고 하기도 했으니 그것이라도 먹이려는 애미의 선택이었다. 그것도 계속 먹으니 질리는 순간이 오기도 했다.그래서 한동안 띄웠다가 잊혀질 만할 때 한번씩 사주면 좋아라 한다.


녀석은 초3. 그래도 요즘은 먹는 것이 좀 늘었다. 오리고기도 먹고 삶은 닭도 먹고(물론 국물은 안 먹는다) 볶음밥도 주먹밥도 좋아하진 않지만 먹긴 한다. 야채를 손톱만큼이라도 먹일 수 있는 방법이다. 볶이를  먹게 되면서부터는 자연스레 닭볶음탕도 먹게 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꼬심(?)이 있었음은 굳이 말로 안해도 알 것으로 본다. 나의 끊임없는 노력도 좀 생각해 달라는 당부이다.


첨가물이 들어간 요리들을 먹다 보니 영양상태가 걱정되어 난 언제나 삶은 계란을 준비해 둔다. 계란! 이것은 완전식품으로 영양소의 집합체란 인식 때문이다. 우유도 안 먹는 녀석에겐 최고의 식재료인 것이다.

라면을 먹거나 햄을 간단히 먹을 때 언제나 삶은 계란을 옆에 두고 계란 하나 먹이는 것에 만족한 엄마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조금 내려놓기도 한다. 그래, 요거라도 먹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정말 간단한 상차림이다

난 체질적으로 남을 불편하게 하는 것을 못 견뎌한다. 차라리 내가 좀 불편하더라도 상대가 편하다면 그걸 선택하는 쪽으로 기운다. 아이들의 먹거리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먹거리란 명분으로 아이를 괴롭게 하기보다는 차라리 차선을 선택하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주고 그 범위 내에서 도울 수 있는 최선을 생각해 내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삶은 계란이다. 우리 집 냉장고에는 삶은 계란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이다.


아이의 경우를 겪고 보니 요 녀석도 곧 여러 가지를 먹게 되는 날이 올 것임이 확실하다. 요즘은 주먹밥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엄마는 기다려주기만 하면 될 일이다. 언제까지라도 기다려 줄게. 강요하진 않을 테야.


[엄마도 이해받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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