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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하루살이 Sep 03. 2024

습관


큰 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때였나 보다. 녀석은 유치원에 적응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여느 아이들은 한동안 울다가 어느 정도 적응 기간이 지나면 잘 지낸다고 했는데 우리 아이는 힘들어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탓도 있을 것이다. 입학을 하고 첫 등원하던 날 혼자서 유치원 버스를 잘 타고 갔다. 안심이 되었다. 첫 등원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어머님 아버님께도 전송해 드렸다.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다. 우리 큰 아이에 대한 그분들의 애정과 관심에 나는 보답해야 했다. 사진을 보내면서도 그분들 좋아하실 생각에 내 가슴도 환해졌다.

그런데 바로 그날 문제가 생겼다. 하원 버스 시간에 맞춰 정해진 장소에 나갔어야 하는데 내가 실수를 하여 늦게 나간 것이다. 버스 시간이 한참 지나 유치원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버스 타고 유치원으로 돌아왔으니 유치원까지 와서 아이를 데려가라는 것이었다.


아니 이럴 수가! 청천벽력 같았다.

어릴 때부터 녀석은 집이 아닌 장소를 기가 막히게 알아차렸다. 명절이나 시부모님 생신이며 어버이날등 시댁 행사가 있을 때 시댁에서 잠을 자게 되는 날엔 난 지옥을 경험하게 되었다. 밤새도록 어찌나 울어대는지 시부모님 눈치 보느라 그 하루 밤이 가시방석이었다. '애들이 다 그렇지'라고 너그러운 마음을 품고 계시는 분들이 아니셨다. 특히 아버님은 사람을 눈치 보게 만드시는 성품이셨는데 늘 불편했다.

겁 많은 내 새끼가 낯선 곳에서 엄말 찾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빠와 얼른 유치원으로 달려갔다. 엄말 보자마자 엄마를 마구 때리며 울부짖었다.

"미안해,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꼬옥 안아 주었다. 녀석을 달래며 나도 따라 울고 싶었다.

그 와중에 선생님은 훈육(?)이란 이름으로 우리 아이를 진정시키는 것이었다.

"이제 그만해~ 할 만큼 했잖아!"

하지만 그 훈육의 목소리는 위로도 공감도 되지 못하는 반감을 생기게 하는 목소리였다. 난 충분히 울도록 두고 싶었다. 분이 풀릴 때까지 때리면 맞고 싶었는데 선생님은 다른 생각이셨나 보다. 본인이 알고 있는 전문 지식으로는 그렇게 훈육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 듯 보였다.(전문 지식이 없는 그냥 엄마의 마음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아이가 좀 진정되고 집으로 데려왔다.


그다음 날부터였다. 유치원 버스를 타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럼 엄마랑 같이 걸어서 가자고 하니 그럼 가겠단다. 그리하여 나의 유치원 등하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땐 둘째가 태어나 아장아장 걸을 때였는데 아침마다 유모차에 한 놈은 태우고 한 놈은 옆에 걸리게 하면서 30분 가까이 걸리는 유치원길을 나도 따라 출퇴근하게 되었다. 보도블록이 고르지 않아 울퉁불퉁한 길을 유모차를 끌고 가는 것은 내겐 힘든 일이었다. 그 당시엔 정말이지 체력이 바닥이었다. 유모차를 평지에서 끄는 것조차 내겐 버거웠다. 악으로 깡으로 버텼다. 유치원에 적응하지 못하면 마치 사회생활을 못할 것 같은 생각에 어떻게 해서든 적응시키고 싶었다.

나중에 생각한 것이지만 유치원에 적응 못한다고 해서 사회 부적응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큰 아이도  일찍 하원하는 생활을 했고, 작은 아이도 유치원을 두어 달 정도밖에 다니지 않았지만 학교에 들어가서는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적응했으니, 난 누구에게라도 어린 나이에 유치원에 꼭 잘 적응해야 하고 필수 교육과정으로 거쳐가야 하는 과정으로 유치원 과정을 생각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반기를 들고 싶다.

녀석은 다른 아이들과 달리 오후 2시에 하원을 했다. 그 뒤의 자유 일과 시간이 별 흥미가 없었는지 점심시간이 지나면 꼭 데리러 오라고 했다. 그렇게 아이는 유치원에 적응해 갔다.

6월 즈음부터는 뜨거운 땡볕 아래 나는 하원 시간이면 곤욕을 치렀다. 땡볕도 뜨거운데 녀석이 뜨겁다면서 짜증을 내고 힘들어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 이참에 버스에 적응시키자! 버스를 타면 덜 덥다고 녀석을 꼬시기 시작했다. 그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혼자서는 절대 안 타겠다고 하여 담임선생님과 버스 기사님의 양해를 구하고 엄마도 일주일정도 같이 버스를 타도록 허락을 받은 것이다. 유치원 버스의 의자가 그렇게 작은 줄 그때 알았다. 아담한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주위 아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다행히 적응하여 버스를 자연스레 타게 되었다.


걸어서 등하원 하던 때 길가에 떨어진 작은 감(우리 고장은 감나무가 가로수여서  곳곳에서 떨어진 감을 언제든 만날 수 있다)을 보면 둘이서 공놀이를 하면서 걸었다. 내가 한 번 차면 녀석이 한 번! 내가 한 번, 녀석 한 번!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 지루할 수 있는 걸음도 녀석과 놀이를 하면 즐거웠다.

아이가 어릴 때는 모든 것이 새롭고 바라보는 모든 것이 감각 세포를 자극시킨다.

작은 꽃을 봐도 노래를 불렀다. (나리 나리 개나리~~)

풀숲에 나비를 봐도 노래를 불렀다.(나비야 나비야~~)

녀석도 따라 했다.

함께 걷는 그 길에 행복이 있었다.


그때부터였나 보다. 길가에 떨어진 감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습관이 생겼다. 한 번 발로 뻥~  차고 지나친다. 옆에서 같이 차주는 어린 꼬마 녀석이 없는데도 한 번은 차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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