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겐 외사촌 언니가 있습니다. 엄마는 3남1녀의 막내 딸. 외사촌 언니의 아버지는 우리 제일 큰외삼촌. 그러니 그 두분의 나이차이도 어느정도 나거니와 큰 외삼촌의 자녀인 언니와 외삼촌의 막내 동생인 우리 엄마의 자식인 나와의 나이차이는 그 만큼 더 벌어집니다. 제겐 인생 선배같은 느낌입니다.
어릴 때 외가에 놀러가면
"우리 윤정이 너무 예뻐서 액자에 넣어서 외가집에 걸어 둬야겠다" 라고 절 예뻐해 주시던 언니 모습이 기억납니다. 한번은 한여름 벌레 먹은 복숭아를 먹으며
"벌레 먹은 거 먹으면 예뻐진대"
라며 어린 날 귀엽게 놀리기도 했습니다.
나이 차이 만큼 어렸을 땐 거리감이 있었습니다. 호칭은 '언니'지만 '어른'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쉽게 말을 놓아서는 안 될 거같은...
그런 언니가 언젠가 제게 브런치를 소개하였습니다. (언니는 이미 '현월안'이란 필명으로 열심히 브런치작가로 활동중이십니다)
대학 때 엄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이후 결혼 이후에도 줄곧 엄마를 돌보며 살아왔던 내 삶이 언니에겐 특별하게 들어왔나 봅니다.
지금 생각하면 늘 선택은 그 당시 상황에서 최선이라 생각하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뒷 상황을 예측하고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요. 누군가는 '희생'이란 꼬리표를 붙여주기도 하지만 전그냥 자연스런 선택이었다고 말합니다. 미래의 커다란 구상을 바탕에 두고 결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마음이 끌리는 대로 선택했을 뿐이었습니다. 내 마음 가는대로...
지금은 곁에서 오히려 제게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셨던 엄마도 안 계시니, 다른 생각들이 날 덮쳐오기도 합니다. 엄마를 돌보았던 시간을 후회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엄마도 돌아가시고 안 계시니 결과적으로 내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온 제 삶이 무의미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비록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퇴직금 같은 것도 없는 인생이 되어버렸지만요. 사회적으로 한 인생으로 보면 어쩜 보잘것없는 경제적 성적표를 떠 안은 것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제게 언니는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고 끊임없이 제 화분에 물을 주고 계십니다. 가끔 전화도 주시고 이번에는 가족행사로 고향에 내려오신 김에 절 만나시겠다고 전화도 주셨습니다.
언니를 만나러 나갈 준비를 합니다. 집에선 잘 입지 않는 새로 산 윈피스를 골랐습니다. 카페 앞에서 언니가 건네고 싶어하는 말씀들을 예측하며 예상 답변도 그려보았습니다. 카페 앞에서 기다리던 내게 언니가 반갑게 제 이름을 부르며 다가옵니다. 늘 언니는 에너지가 넘칩니다.
카페에 마주 앉아 언니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제가 예상했던 대화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좀더 커다랗게 생각하고 미래를 꿈꾸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귀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누군가 날 향해 이런 애정과 관심을 보인다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가 생각하고 살아왔던 방식과는 다른 방향이었습니다.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노력하는 삶, 지금보다는 더 나은 상태를 추구하는 삶. 언니는 노력하면 새로운 삶이 눈앞에 펼쳐진다는 이야기를 언니의 실제 경험담을 들려주면서 제게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지껏 살아온 삶은 미래를 계획하고 설계하고 계산하고 살아왔다기보다 현재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제가 살아온 방식에 나름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언니가 권하는 방식을 받아들이려면 제가 살아온 방식과는 다른 선택을 해야합니다. 일단 아이들 학원부터 보내야겠죠. 조금 더 푸시해 주면서 아이들 관리(?)를 시작해야 합니다.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제 아이들이 새로운 방식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
생각이 많아지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