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주로 먹는 혼밥 식단이다. (가족들과 같이 먹을 때는 다른 식단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손대지 않는 반찬들이다) 밥 양을 줄이는 것이 제일 힘들다. 한 수저 더 먹고 싶은 맘 참아내기가 첨엔 너무 곤욕이었다. 단백질을 흡수하려면 탄수화물이 필수라고 하는데 탄수화물을 적정선 이상으로 먹으면 바로 혈당이 치솟으니 조심하며 매 식사 시간마다 그 양을 조절한다.
씹는 느낌을 느끼고 싶어서 엊그제는 멸치를 좀 볶아서 식단에 추가해 보았다. 물엿 옷을 입은 멸치가 과자처럼 부서지는 느낌을 곱씹으며 맘껏 먹지 못하는 과자를 대신 먹는 기분을 느껴본다.
옆집 친구가 가져다준 가지는 돼지고기와 볶았다. 역시 고기를 씹어야 포만감이 들 테니까. 그리고 조금 더 포만감을 증폭시키기 위해 두부 몇 조각과 브로콜리도 챙겨 먹는다. 모든 식단 구성원의 목표는 오로지 포만감을 증폭시키는 데에 목적이 있다. 근본적으로 중요한 영양 섭취는 기본으로 깔고 있지만 녀석들의 주된 업무는 포. 만. 감. 증. 대!
조금만 배가 부르다는 느낌이라도 들면 어김없이 혈당 측정기는 알아차린다. 그러니 혈당을 많이 올리지 않으면서 포만감을 주는 것들로 관심이 자꾸 쏠린다.
너무 씹고 싶은 욕구가 충족이 안되니까 얼마 전엔 아몬드를 한 통씩 사다 놓고 간간이 몇 알씩 꺼내어 입에 넣는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지난주엔 변비로 좀 고생했다. (잠깐 검색해 보니 부작용이 변비라고 쓰여 있었다) 최근에는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되었는데 토마토이다. 갈증 해소도 되고 어느 정도 포만감도 선사해 주니 요즘은 냉장고의 주인이 되었다.
그런데 일주일 사이에 가격이 두 배로 뛰었다. 요즘 물가 모를 일이다. 건강식품으로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난 원래 토마토를 좋아하지 않는다. 근데 이게 이렇게 좋아질 수도 있는 것이구나 싶다.
당뇨로 식단을 조절하면서 식재료가 주는 본연의 맛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토마토도 그렇지만 가지도 이렇게 맛난 식재료인 줄 모르고 있었다. 올여름 새로운 미식의 세계에 내가 입문하게 되었다.
맘껏 먹고도 살찌지 않던 어릴 적엔 몰랐던 것들이다.(난 원래 좀 마른 체형이다. 내가 혈당으로 고생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먹는 즐거움. 음식 본연의 맛. 재료가 주는 섬세한 감칠맛. 신선한 야채가 주는 소박한 맛. 요즘 하나하나 느끼면서 조절하고 있다.
가끔 아주 가끔 어제처럼 참지 못하고 단 것을 먹을 때도 있다. 어제는 작은 아이 생일이어서 케잌을 샀는데 그만 그 부드러움과 달콤함을 눈앞에 보고 그냥 있을 수 없어서 한 조각 먹고는 '에라 모르겠다'해버렸다. 저녁도 먹은 뒷 시간이었다. 저녁 식후 혈당 수치가 괜찮아서 용기를 내어보았다. 그래, 난, 케잌 한 조각에도 용기가 필요한 겁쟁이가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공복 혈당을 체크해 보았다. 요즘은 특별히 야참을 먹고 자는 날에만 공복 혈당을 잰다. 걱정스러운 맘이지만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 이미 내 몸속에 들어온 이상 배출 시킬 수는 없으니...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예상보다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
오늘 아침 공복혈당 (기준:100)
학교 때 성적표 받을 때보다 요즘 더 떨리는 성적표를 매 끼니 때마다 받고 있다. 그 성적표에 따라 하루 기분이 좌지우지된다. 휘둘리지 않으려 해도 어쩔 수 없다. 좀 더 나은 성적표를 위해 열심히 움직이려고 노력한다. 학교 때도 가져보지 못했던 좋은 성적표에 대한 욕망이 커져가고 있다. 그래야만 나도 평범하게 먹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오늘 아침은 일단 또 안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