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너네 선생님 화가 많이 나신 것 같던데? 릴레이 책 읽기 때문에!"
"맞아요~!"
"엄마 오늘 설문조사 했잖아~"
"아, 알고 있어요~ 엄만 뭐라고 답했어요?"
"엄만 당연히 릴레이 책 읽기에 동참한다고 했지~"
6학년 큰 아이 반 담임 선생님께서 특별한 설문 조사를 실시하셨다. 설문 조사에 앞서 반에서 실시하고 있는 "릴레이 책 읽기"에 대한 간단한 설명(일주일 동안 책을 읽고 간단히 독후 소감을 독서 통장에 기록한 후 정해진 날짜에 책을 교환한다. 하루 만에 몰아서 읽기엔 많은 양이니 매일 30분 이상씩 꾸준히 읽을 것을 권고하는 내용)과 함께 아이들이 수행을 잘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집에서 독려해 주시길 바라는 장문의 글이 '학교종이 앱' 화면 올라왔다.
더불어 아이들이 책을 읽어오지 못한 이유를 적어 주셨는데 학원 숙제가 너무 많아서 시간이 부족하다는 불평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릴레이 책 읽기를 계속 진행할 지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묻는 설문 조사였다.
어찌 보면 당황스러운 설문 내용이었다. 릴레이 책 읽기에 동참하지 않는 학생은 그 점에 대한 터치는 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포까지 해주셨다. 학기 초에도 비슷한 문자를 한번 받은 기억이 있는데 요즘 선생님들의 힘겨움이 그대로 전해져서 안타까웠다.
TV에서 보았듯 선생님들이 길거리로 나와야 했던 수많은 이유 중에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학원 숙제를 하느라 학교 숙제를 못한다...
음.. 이건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아닐까. 난 너무 일찍부터 사교육을 시키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요즘엔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을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 물론 맞벌이로 아이들을 돌볼 수없어 어쩔 수 없는 '돌봄'의 형태로 학원을 이용하는 경우도 상당수 존재한다고 본다. 우리 사회는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까.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다.
이번 주엔 릴레이 책 읽기 성과가 너무 안 좋았나 보다. 지난주에 수학여행을 다녀왔으니 그럴 법도 하다. 모든 문제가 폭발할 땐 늘 그렇듯 오랫동안 참아왔던 인고의 시간이 극에 달한 시점이 아니었을까 한다.
이럴 때 부모가 중심을 잡아주면 좋으련만.
그렇다고 당장 학원을 끊어버리는 방법을 선택할 부모는 없겠지. 선생님도 학부모도 고민이 깊어지겠다. 아이들은 또 더 시달리겠지. 아직 초등학생인데 벌써부터 입시 준비를 하는 모양새다.
엊그제 새벽 3시 즈음에 깨어서 책을 읽던 큰아이가 생각난다. 선생님의 독려로 정신이 번쩍 들었었나 보다. 그 시간에 눈 떠 일어난 이유를 뒤늦게 알았다. 학부모 설문 조사를 할 정도면 학교에서는 이미 수많은 채근의 시간이 있었겠지... 알고 보니 그 시간에 깨어서 책을 읽은 것이 이틀 째였다고 한다.
우리 아이는 학원을 다니지 않아 학원 숙제를 해야 하진 않지만 본인이 보고 싶은 폰을 맘껏 보고 자신의 수행 과제를 완수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보여준 것이다. 내 아이가 무난하게 그 과정을 잘 따라가는 것에 엄마는 일단 안심이다. 제 볼 일 다 보고 과제도 잘 수행하고! 오늘도 기특하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