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6학년이다. 이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힘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 중의 하나는 '간섭'을 하지 않고 조용히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간섭하는 말을 내뱉으면
"지금 하려고 했어요!"라며 불편한 기색을 온몸으로 뿜어냈다.
3학년 즈음에는 힘든 숙제가 있을 때 도와주기도 했다.
녀석은 미술 숙제를 힘들어했다. 내가 어릴 때 그리기를 힘들어했었는데 그걸 닮은 거 같아 안타까웠고, 그 마음이 너무도 이해되는 상황이었다. 지금도 난 그림 그리는 사람을 보면 너무나 신기하다. 그럴 때면 내가 우스개 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난 그래프는 잘 그리는데 그림은 못 그려~"
꼼꼼하게 처리 하느라 언제나 학교에서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집으로 가져왔다. 대충 하지 않고 완성도를 높이는 모습을 곁에서 응원해 주었다. 조금씩 힘낼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대충대충'보다는 '꼼꼼'이 나으려나? 좋게 생각하려해도 걱정이 반이었다.
3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교육열이 높으신 분이어서 다른 반에서는 실시하지도 않는 '독서록'을 쓰도록 하셨는데, 그것도 완벽하게 잘하고 싶은 마음에 끙끙거리곤 했었다. 지금 작은 아이가 3학년이니 그 나이엔 힘들었을 과제였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즈음 너무도 힘들어해서 다른 친구들을 편의점에서 만났을 때 그 친구들에게 물은 적도 있었다.
"너희들은 독서록 힘들지 않니?"
"힘들어요!"
"저는 안 하고 그냥 혼나요!"
곁에서 다른 친구가 우리 아이의 근황에 대해 전해준다.
"○○이는 잘해서 선생님한테 칭찬받아요~!"
"아, 그래? ○○이도 거의 매번 울면서 쓰는 거야.
○○이도 많이 힘들어해~~~"
때로는 공감이 위로가 된다는 생각에 난 그 아이들에게 위로의 말을 해주고 너희들의 힘겨움을 이해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힘겨움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고.
3학년 2학기가 시작되어 한참 지난 어느 가을 날. 녀석은 아프지도 않은데 학교에 하루만 가지않고 쉬고 싶다고 했다. 청천벽력 같았다. 하지만 그 표정을 보고 학교에 기어이 가라고 할 수 없었다. 너무 간절한 그 표정을 보고 깊은 고민 끝에 받아주었다. 그날 그렇게 엄마와 시간 보내는 동안 어떤 힐링의 시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다음 날부터는 약속 대로 잘 다니게 되었다. 아이에게 신뢰가 쌓이고 있었다. 마음을 조금씩 놓기 시작했다.
조금 더 자란 4, 5학년 즈음에는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었는데, 나의 답변을 다 듣고는 본인의 생각을 적어 내서 날 당황하게 하는 일도 있었다. 내 도움 없이 그냥 스스로 했더라면 내가 귀찮아하는 상황이 없었을 텐데... 하면서 녀석에게 화가 나기도 했었다. 다시 한 번 생각하면 내 이야기가 어쩜 참고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테고 본인 생각을 적은 것은 오히려 더 칭찬받아야 할 일이지만 고민하고 고민해서 내놓은 의견이 무시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화가 나기도 했었다.
그렇게 힘든 과정 속에서도녀석은 자라고 있었다. 본인이 하고자 계획한 일을 잘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특별히 지시하지 않아도 집에 사다 놓은 수학 문제집을 틈틈이 푸는 것이었다. 4학년 때는 문제집 한 권을 다 풀어내서 날 놀라게 하기도 했다. 신이 나서 다음 학기에 또 같은 문제집을 계속 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그 성과가 계속되진 못했지만 (본인 나름의 이유가 있었음)마음먹은 것은 해내고야 마는구나... 를 알게 해 줬다.
최근 신기하게 바라보는 습관이 있는데 잠들기 전에 본인만의 루틴 행동이 있다. 양치질을 마치고 눈운동(시력 저하를 막는 운동법을 인터넷에서 알게 된 후 그걸 실천하기 시작한 것이다)을 한참 하는 것이다. 그 나이 땐 양치질을 빠뜨리지 않는 것도 힘들 텐데... 라며 나의 경우를 비추어 생각해 보기도 했다.
내가 살짝 잠이 들었다가 깨어서 녀석이 눈운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날이 허다했다. 깜깜한 한밤중 주방 한쪽에서 늘 있었던 일이다. 요즘은 그러려니 하고 있지만 그 모습을 처음 봤을 때 엄청 놀랐다. 신기하기까지 했다.본인이 정한 루틴을 어쩜 저리도 잘 지킬까. 누가 시킨다면 오히려 싫을 수도 있지 않을까.
어제는 잠들었다가 새벽 3:30쯤 깨었는데 거실에 환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주방불을 내가 깜빡했나.. 하고 끄러 나갔는데 주방이 아니고 공부방이었다. 녀석이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을 읽고 잤어야 했는데(일주일 동안 이어지는 과제 릴레이 책 읽기)원치 않게 일찍 잠들었다가 깨어서 읽고 있었던 것이었다. 자다가 깬 것도 신기하고 머릿 속의 생각을 실천해 내는 것도 엄마눈엔 기특해 보였다.
해야 할 일을 스스로 해내는 것. 녀석은 내게 가랑비에 옷 젖듯 신뢰를 심어주고 있다. 학교 다녀와 계속 폰만 보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 같지만 그 사이사이 내가 알지 못하게 본인이 해야 할 과제를 조용히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따로 과제를 확인하는 일은 없게 되었다. 어떨 땐 알림장을 건성으로 보기도 한다. 녀석을 믿어줘도 되겠다. 한없이 믿고 싶다. '믿는 만큼 자란다'는 말을 믿으련다.내 아이가 믿어 주는 만큼 분명 자랄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