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을 나누는 것은 배움의 마침표다.
"배움의 끝은 없다."라는 옛 말이 있다.
이렇게 배움에는 확장성, 지식의 무한성이 있기에 끝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중학교 3년 동안의 영어 교과서를 주면서 끝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난 자신 있게, 중학교 3학년 교과서를 가장 잘 가르치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첫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일 년 전, 주변의 아이들이 '영어 유치원'에 다니는 것을 보고 나와 아내는 걱정을 했다.
"우리 아이도 영어 유치원에 보내야 하는 건 아닐까?" "남들보다 뒤 쳐지면 어떨까?" 등의 걱정과 근심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런 걱정도 잠깐으로 끝났다. 영어 유치원의 가격을 잠깐 조사해 보니, 걱정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쌌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난 바로 아내에게 "그럼, 내가 가르칠게."라고 말해버렸고, 그 이후, 나와 딸의 저녁 영어 공부 시간이 시작되었다.
난 딸과 함께, 초등학교 저학년용 영어 참고서를 사서 집에서 단어와 문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서 '영어'만큼 날 힘들게 한 과목도 없을 듯하다. 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를 포기하기 시작해서 결혼할 때까지 영어를 하지 않고 있다가, 지금의 '노르웨이'회사로 전직을 하면서 영어를 시작했다.
새롭게 가족이 생기고, 아내의 임신 소식도 있는 상황에서 전직한 회사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영어'를 공부했던 아픈 추억이 있기에, 난 정성스레 딸이 영어를 재미있고 즐겁게 배울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영어를 가르쳐 본 적이 없던 난, Be 동사에서부터 막혔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무사히 아이와 영어 초급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이 시간을 통해, 가장 효과를 본 사람이 누굴까? 영어 유치원을 보내지 않아 돈을 아낀 아내일 수도 있고, 본인도 모르게 영어 상급자가 된 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가장 큰 혜택을 받은 사람은 '나'였다. 난 이 시간을 통해 나도 모르게 영어 실력이 무척 향상되어 있었다.
이제까지의 영어가 전투 영어 (의미만 통하면 되는) 였다면, 이후의 영어는 기본기가 있는 영어로 변했다고 한다. 그리고 회화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주변의 평이 있다. 아마도 딸과 수많은 문장을 읽어 가며 자신 있게 딸 앞에서 말하고 읽었던 그 시간들이 나의 영어력을 한층 높여 준 듯하다.
그리고 작정하고 사람을 가르쳐 본 나의 첫 추억, 사람을 가르치는 공부를 했던 것도 나에겐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난 기대하고 있는 시간이 있다.
"우리 딸이 동생들의 영어를 가르치는 시간"을 기대하고 있다. 물론 딸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딸에게 유익한 시간 그리고, 새롭게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 대해서 느끼게 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남을 가르쳐 보는 것은 배움의 가장 효율적이다.
나만 알고 있지 말고 배웠으면 알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