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나를 기다려주고 있다.
나의 전화를 기다려 주고, 나의 소식을 기다려 주고, 나의 발걸음을 기다려 주고 있다.
생각만 해도 행복해진다.
요즘은 작정하고 특별한 여행을 하고 있다.
내년의 목표를 정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으며 며칠간 지속적으로 쓰고 있던 행복에 관한 관찰의 글을 멈추고 있었다.
오늘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가 보니, 어떤 분께서 내 글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서, 아픈 건 아닌지 걱정해주는 쪽지를 보았다.
나의 피곤했던 하루가 '나를 걱정해 주는 그리고 기다려주는 글'로 인해 모든 피곤이 풀리면서, 행복을 맛보았다.
혹시 주변에 누군가가 당신을 기다려 준 적이 있는가?
브런치에서 내 글을 기다려 주시는 분. 첫 댓글에 이렇게 달아주시니 항상 나를 지켜봐 주셨던 것이 팍팍 느껴진다. 난 꽤나 오랜 시간을 홀로 지낸 경험이 있다. 너무나도 울적하고 힘든 시기에 난 이상한 경험을 했다.
어느 시골마을에서 늦은 버스를 타고 컴컴한 집 근처 정류소에 내리면 너구리 한 마리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가끔은 무언가에 홀린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너구리는 나를 며칠간 졸졸 쫓아왔다.
저녁도 먹지 못하고 밤늦게 아르바이트에서 퇴근하며 남은 재료로 대충 만든 삼각 김밥을 조금씩 떨어뜨리며 집을 향해 걸어가면 그 너구리는 나를 졸졸 다라왔다.
지금도 마찬가지 지만, 당시 난 겁이 많고 너구리라는 동물이 너무 생소해, 만지거나 가까이 가지 못했지만, 분명 그것은 고양이도 강아지도 아닌 너구리였다.
나는 그 힘든 시기, 나를 기다리고 있는 너구리와의 만남에 큰 위안을 얻은 듯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동물은 너구리가 아니고 강아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가 날 그리고 나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로도 참 감사했다는 그 느낌이 나에게는 무척 소중한 추억이 되어 있다.
항상 페북과 브런치에서 나를 응원해 주시는 멋진 분. 그분의 유행어인 굳드굳드는 비타민 같다.
지금은 그때 보다 많이 성장하여 나를 기다려 주는 가족이 4명이나 있기에, 나의 퇴근길도 항상 기쁘고 즐겁다. 특히 출장에 다녀와서 "아빠"하면서 큰소리를 외치며 다가오는 아이들의 얼굴은 내가 언젠가 꼭 동영상을 찍어두고 싶을 정도로 이쁘고, 화려하다.
난 이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며칠간 힘든 출장길의 피로가 싹 풀리는 경험을 하곤 한다.
특히 이번처럼 현관 앞에서 부터 아이들의 마음을 느끼며 들어간다면 정말 난 행운아라고 생각이 된다.
우리 집 5세 쌍둥이 형제가 장식한 크리스마스 배너
이렇게 누군가가 당신을 기다려 준다면 당신은 참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심지어 택배 배송에서도 기다림을 느끼며 행복을 찾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행복 그것이 진정으로 12월 말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가 아닐까?
단순히 송년회에 참가해서 시끌벅적 수다를 떨고, 사진을 찍는 행위보다 일 년간 나를 그리고 나와의 시간을 기다려 준 사람들을 먼저 챙겨 보면 어떨까?
누가 날 많이 기다렸을까? 나를 기다려 주는 사람이 누구일까?
오늘은 우선, 낮에 아버지랑 식사라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