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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하고 있는 아빠 Feb 05. 2020

(마음) 6
객관식에서 벗어나는 행복

내 행복은 내가 만들어 가는 예술작품입니다.

 우리나라 교육은 객관식 시험이 주류였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객관식 시험과 정답이 존재하는 시험이 주류로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지인의 포스팅에서 '김소월 작가의 진달래 꽃'이라는 시를 주제로 시험문제가 출제된 것을 보았다. 

 아마도 이 시는, 작가 자신이 아니면 그 내면의 깊은 의미와 규칙성 또는 여성적인 어조 등에 대해 누구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시나, 문학작품 그리고 예술작품은 있는 그대로를 자신이 받아들이는 그야말로 예술적 행위와 교감인데, 그것을 획일적인 시험이라는 테두리로 가두어 놓는 행위를 난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런 교육을 받고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스스로에게 행복이란?" 시험을 낸다면 우리는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최근 인터넷 TV로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영화를 아내와 함께 봤다.

 결국 아내와 나는 굳이 남이 힘들어하는 이야기를 돈 내고 보고 있다는 생각에 도중에 관람을 멈추어 버렸다. 

 누구에게는 82년생 김지영이 그저 부러운 존재일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연민의 대상일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82년생 김지영'을 연민의 대상으로 느끼게끔 주입을 하고 있는 듯 나와 아내는 느꼈다. 


 몇 년 전 한참 유행하던 이야기 중에, 딸아이가 한 명 있으면 금메달이고, 아들이 한 명 있으면 은메달이고, 남녀 아이가 하나씩 있으면 동메달이고, 남자아이만 둘이면 목 메달이라는 우스운 이야기가 있었다. (웃겨서 우스운 이야기가 아닌 어이없는 우스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난 노르웨이에서 한국의 고객들과 회의 중에 쌍둥이의 임신소식을 들었고, 그 이야기를 들은 한국의 고객의 임원분은 영어사전을 찾아가며,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에게 자살을 친절하게 권해 주신 일화도 있다.

 하지만, 난 지금 우리 쌍둥이 남자아이들 덕에 너무나도 행복하고 즐거운 생활을 보내고 있다.  


 최근 말이 많아진 강남의 아파트의 집값 상승 문제, 길가에 다니는 수많은 채무 투성이의 할부 외제차들을 보며, "우리는 아직도 객관식의 행복에 살고 있지 않을까"라고 느낀다.



 "과연 내 행복은 누가 측정할 수 있을까?"  

 내 행복을 스스로 측정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행복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 꽃'을 보면서 자신이 느낀 점, 발견한 점을 서로 이야기하고 그것에 대해 경청해주는 교육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난 이 부분이 특이해서 재미있었어요." 

 "지금 내 상황에서는 이 시를 읽고 이렇게 느끼게 되네요."

 "이 시를 쓴 시대의 연애관이 궁금해요" 등의 여러 생각을 말하며 자신이 느낀 점을 이야기한다면 그 안에서 이 시가 가지고 있는 즐거움을 같이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벌써 우리는 행복한 상태에 있다. 사람들은 정답을 찾아 행복을 쫓아가려 하지만, 실제로 행복은 내 주변에 그리고 내 발밑에 수없이 쌓여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행복을 발견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닐까?


 하여간, 나에겐 행복은 철저한 주관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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