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도쿄로 이직을 했다

왜? 왜?

한국에서 외국계 기업의 지사장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이런 편안함에 싫증이 났고, 회사에서 보내준 MBA를 마치고 나니

더욱 한국의 편안함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직 젊은데, 좀 더 야생의 생활을 해보고 싶었다.


미세먼지도 우리 아이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쌍둥이로 태어난 아이들은 얼굴이 작은 편이라 기관지와 콧 속의 수술을 두 번이나 했다.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대에 누워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리고 병원에서는 재발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난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난 우리 딸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면서 그리고 즐기면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그것이 요즘 아이들에게 부족한 사회성을 길러주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초등학생인 딸의 주변에는 모두들 학원의 쳇바퀴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딸이 좋아하는 클래식 기타 선생님 조차, 입시와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퇴짜를 먹었다.

무조건 입시라니...


난 작지만, 나만의 단독 주택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아파트가 아닌 이쁜 단독주택이 그렇게 갖고 싶었다.

서울에서는 구할 수가 없었다. 조금 외곽으로 나가야 하는데,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아 아기자기한 이쁜 단독주택에서 아이들과 살고싶다.......... 집도 꾸미고 싶고......... 아아.......


회사에 부탁을 했다. 다른 나라의 지사에서 근무를 해보고 싶다고...

일본이나, 말레이시아로 가보고 싶다고...


결국 내가 추진하던 말레이시아의 JV는 물 건너갔고, 맨땅에 헤딩할 자신 있으면 일본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과연 한국인인 내가 일본에 가서 뭘 할 수 있을까?

그래도 뭔가 있겠지,

꼭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지냈다.


2020년 2월 26일 가족들과 함께 동경에 왔다.

우리가 도착한 OZ1085편 이후의 편에서 대구 방문자들의 입국이 금지되었으며,

다음날인 2월 27일부터는 회사의 명령으로 한국지사 및 일본지사의 해외 이동이 금지되었다.


잘 살 수 있을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