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가정에도 시스템이 필요하다
노르웨이의 국토 면적은 385,207km²로 대한민국의 약 4배 정도 크기이다. 하지만 인구는 약 540만 명으로, 서울 인구의 절반 정도다. 도심인 오슬로나 베르겐에는 사람이 북적거리지만, 그 외의 지방 도시 혹은 우리 회사의 공장이 있는 마을에 가면 적막할 정도로 사람이 없다. 내가 처음 공장이 있는 작은 마을에 출장을 갔을 때 아침운동을 하면서 적막감이 무섭다고 느낄 정도였다.
노르웨이 사람들이 긴 휴가를 떠날 수 있는 건, 인구는 적지만 회사나 공장에서 업무와 작업의 표준화가 무척 잘 되어 있어서다. 약 2달간 공장을 떠나는 사람들 혹은 병가를 내거나 출산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을 위해 누가 오더라고 신속하게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도록 시스템 표준화가 잘 되어 있다.
노르웨이의 시스템 표준화를 대표하는 회사가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1864년 DNV(Det Norske Veritas)라는 선급회사가 창립되었다. 선급회사는 해양에서 활용하는 모든 구조물과 선박에 대해서 안정성 점검을 비롯한 공인검사를 하고 인증해준다. 인증을 받지 못한 부품과 선박은 안정성의 문제로 해양에서 운행하거나 설치할 수 없다. 해상 강국이었던 노르웨이에서는 1860년대 당시 선박 보험회사들이 성업 중이었다.
이들 보험회사들이 연합해 상선의 안전을 진단하고 이를 토대로 보험요율 등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세운 것이 DNV이다. 이후 선박 안전뿐 아니라 환경과 선박 보건, 에너지, 자동화, 선박 음식 등에 관한 진단까지 함께 실시하며 세계적인 검사 및 품질 인증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역할을 하는 기업들이 노르웨이 산업 전반에 퍼져, 오래전부터 노르웨이에서는 모든 사업에 안전화와 표준화를 중시하는 문화가 정착됐다.
모든 조직에는 시스템, 즉 규율과 표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시스템은 협의를 통해 늘 새롭게 발전해야 한다. 국가에는 법이라는 시스템이 있고, 회사에는 사내 규칙이 있다. 물론 가정에서도 시스템이 있다. 정형화된 시스템은 아니더라도, 가정마다 암묵적인 규칙이 존재한다. 이를 좀 더 구체화시키고 정형화시켜 보자는 것이 나의 노르웨이식 가정 경영 전략이다.
가정경영을 시스템화하면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막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아이들에게 잔소리 하는 시간이 줄어들면 집안 분위기도 좋아지고, 시간과 에너지 낭비도 줄어든다. 좋은 가정 시스템에는 ‘환경 설정’이 중요하다. 마음의 변화에 상관없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상황’을 표준화해 놓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면 매일 5Km의 산보를 하기로 한 목표를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럴 때는 눈을 뜨자마자 입을 옷과 방한도구를 머리맡에 준비하고, 아침에 산보하면서 듣고 싶은 강연 등을 미리 찾아 놓는다. 이렇게 간단하게라도 환경을 만들어 두면 실패할 확률을 현저하게 줄일 수 있다.
앞서 우리 가정의 전략 ‘EBS’에서 말했듯 ‘불필요한 낭비 제거’도 가정 시스템을 만드는 데 중요한 조건이다. 우리 집에서는 ‘불필요한 잔소리’와 ‘아이들을 꾸중하는 시간’을 가능한 줄이기 위해 아내와 함께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식사 시간을 3번 이상 알리지 않기’, ‘책가방은 스스로 준비하기’, ‘세탁물과 쓰레기는 본인이 제자리로 가지고 가기’, ‘취침 전 장난감을 제자리로 옮기기’ 등이다. 간단한 행동 같지만 잘 지켜지지 않을 때는 엄격하게 교육한다. 아이들의 TV를 보거나 게임을 할 때도 규칙이 있고 아이들과 부모가 서로의 약속을 매우 존중하고 있다. 아이들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엄격히 정해져 있고, 한 달에 한 번은 ‘어린이의 날’로 정해서 지키고 있다는 것 역시 이런 시스템의 일부다.
가정의 시스템을 표준화해 놓으면, 아이들이 스스로 행동하고 생각하는 마음이 생기며, 규율을 따르는 습관이 생긴다. 자신이 다소 희생하고 주변을 배려할 줄 아는 법과 책임감도 배울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을 실천하기 어렵게 하는 건, 어느 때는 아이들에게 맡기는 것보다 내가 하는 게 빠르고 간편하다는 생각이다. 나도 급하거나 가끔 귀찮을 때 아이들에게 맡기지 못하고 모든 일을 직접 해주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이렇게 되면 가정 경영 시스템은 지켜지기 어렵다. 모두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경영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