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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하고 있는 아빠 Nov 27. 2019

(여행)2 과거의 나를 만나는 행복

혼자 떠나는 추억 여행

초등학교 6학년 때 먹은 피시 버거의 '타르타르'소스의 맛을 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때는 단지 좀 특이한 마요네즈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분명 '타르타르소스'였다.

 


오늘 처음 방문하기로 한 거래처의 사무실, 알고 보니 어릴 적 내가 오랜 시간 살았던 곳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그곳에서 내가 5살 때부터 35살 때까지 30년간 사셨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모두 내가 1회 입학생이었을 정도로 새로운 도시였다.

하지만 최근 오랜만에 방문한 그곳은 신도시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역사성을 잘 가지고 있었다.

우연히 방문한 동네라 업무 미팅을 마치고 여유 있게 걸어서 다음 역 까지 가기로 작정하고 한 시간 정도 걸어 보았다.

아직도 건재한 아메리카나 홈페이지에서 http://www.americana.co.kr/b2b/burger/

가장 처음 만나 곳은 이전 '아메리카나'라는 햄버거 체인점이 있던 상가였다. 그리고 그 '아메리카나'라는 햄버거 가게는 없어진 지 상당히 오래되었지만, 어릴 때 부모님이 식당일을 하셨을 때, 나와 내 동생이 천 원씩 가지고 가서 저녁을 해결하던 곳으로 내 머릿속에 강하게 남겨져 있었다.

동생은 일반 치즈버거를 좋아했고, 항상 특이한 것을 좋아하던 난 남들이 잘 먹지 않던 피시 버거를 그렇게 좋아했다.

남들이 먹지 않았기에, 미리 만들어 놓지 않고 항상 새롭게 피시 패티를 그 자리에서 튀겨 주셔서 뜨거운 감촉을 잘 유지했고, 그 당시 햄버거에는 케챺이 들어가는 데, 피시 버거에는 마요네즈 같은 소스 (타르타르소스)가 있어서 난 그 소스 맛에 피시 버거를 좋아했었다.

사실, 이때의 햄버거는 나에게 썩 좋은 추억은 아니다. 물론 맛은 있었다.

하지만, 이 햄버거는 부모님이 모두 일하러 가셨을 때, 내가 여동생을 데리고 가서 먹었던 기억이 더 많이 있기에, 나에게는 조금 슬픈 그런 이미지가 있다.


그런 슬픈 이미지를 생각하다 보니, 어머니가 식당일을 하시면서 내 점심 도시락에 항상 손으로 써주셨던 손편지가 생각났다.

항상 성경말씀과 함께, 걱정하지 말라고 그리고 엄마는 널 정말 사랑하고 있다고 써주신 손편지가 생각이 나며 난 다시 한번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맞다 엄마가 날 그렇게 사랑해 주셨구나."를 느끼며 또 걸었다.  

좌측 아래쪽 총각네가 예전의 아메리카나의 자리. 영동플라자.

예전에 살았던 아파트는 몇 년 전 재개발로 없어졌지만, 그 앞의 상가는 그대로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갔던 상가에 드디어 도착했다. 난 상가까지 이동하면서 내가 처음으로 좋아서 구입했던 가수의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상가의 "산울림 레코드"라는 곳에서 샀던 기억이 난다. 그 앨범은 바로 "이문세 4집"의 카세트테이프였다. 모든 노래가 베스트였던 그 음악을 들으며 내가 다녔던 상가로 들어셨다.

들어서기 전에 날 맞이한 장소는 상가 외벽 계단이었다.

이 계단에서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몇 년간 작은 포장마차가 있었다.

포장마차는 저녁 9시 정도부터 새벽 늦게까지 영업을 했고, 메뉴는 순대와 홍합만 있었다. 그리고 항상 과묵하고, 무섭게 생기신 아저씨 혼자서 하셨는데, 그 아저씨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다. 전직 사장에서부터 무서운 조직폭력배까지 그 아저씨에 대한 소문은 정말 다양했고, 아무도 실제를 알 수 없었다.

이 포장마차에서 난 독서실 형들과 공부를 마치고 순대도 먹고 홍합도 무수히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집 바로 앞의 삼호상가는 아직 건재 하구나.

이 상가에는 내가 매일 다니던 문방구가 있다. 이 문방구의 사장님과 사모님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나는 것을 보니 '오래 다니긴 했구나' 싶다.

지금의 사장님은 내가 기억하기론 내가 어릴 때, 군대에서 휴가 나온 전 사장님의 아들이 하고 계셨다. 그분의 나이는 잘 모르지만 지금은 백발이 가득한 깊은 중년이 되어 계셨다.

아는 척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인사만 드리고 나왔다.

예전에 상가 중심에 있던 아이스림 가게, 한 시대의 음악과 비디오를 책임지고 있었던 '산울림 레코드'는 벌써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빈 창고 같은 공간으로 되어 있었고, 상가 전체는 그 나이와 함께, 썰렁하고 조용하게 서서히 늙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천천히 '이문세 4집'의 노래들을 들으며 구석구석 나도 잊고 있었던 내 기억과의 만남의 시간에서 어둡고 힘들었던 나의 사춘기 시절의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부모님이 집에 계시지 않아서 섭섭했던 마음과, 공부를 잘하지 못했던 나, 그리고 왜소한 체격에 항상 의기소침했던 나를 만났고, 그랬던 나지만, 잘 버텨준 그때의 나에게 감사의 인사를 할 수 있었다. 


"고마웠다. 그리고 수고했다."


또한, 그 시절 나와 함께한 어머님의 편지의 감사와 그 시절 같이 했던 독서실 형들과의 지속적으로 우정을 갖고 있는 것, 그리고 그 시절 함께 했던 친구들과 지속적으로 만나며 같이 늙어 가고 있는 사실에 무척 행복해졌다.

유치원 동창, 중학교 친구 모두 어른이 되고 가족이 있어도 좋은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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