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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토리 Dec 03. 2019

[윤희에게] 엄마의 외로움, 딸의 시선

새봄의 시선을 따라서, 중년의 퀴어서사

나와 엄마의 유대는 아빠가 들어오지 않는 밤, 작은 상 앞에서 소주를 기울이는 엄마의 곁에 누워 만들어졌다. 엄마의 외로움은 소주 한 잔에 가득 담겼고, 어린 딸은 그런 엄마의 옆에서 누워 조금의 온기를 나누었을 뿐이었다. 이미 지나간 사춘기 소녀의 가슴 떨리는 사랑이야기를 듣던 시간들은 '아빠를 만나지 않았다면,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엄마의 삶이 더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들로 뒤덮여있다.


영화 <윤희에게>는 새봄이 엄마 윤희의 옛 친구로부터 온 편지를 읽으며 전개된다. 항상 외로워 보이던 엄마에게도 애틋한 사랑의 추억이 있었음을 알게 된 새봄은 엄마에게 둘만의 여행을 제안하며, 편지를 보낸 쥰이 사는 동네로 향한다. 새봄의 시선에서 항상 불편하기만 했던 엄마의 공허함과 외로움의 해답은 문득 엄마에게 도착한 편지 한 통에 있었다.



중년여성들의 퀴어서사

이 영화는 왜 진작 이런 서사를 담은 콘텐츠들이 나오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 만큼, 담백하고 애틋하게 두 여성의 사랑을 담아낸다. 이렇게 등장한 중년여성들의 퀴어서사는 영화 벌새와 우리들, 82년생 김지영까지 젊은 여성들의 서사와 페미니즘을 담아낸 콘텐츠들이 문화적 대세가 된 흐름에서 등장한 아주 반가운 소재였다. 어린이와 청년, 중년,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와 연대가 스크린에 등장하면서, 비가시화되어 발화되지 못했던 수많은 존재들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들리고 있다.


퀴어의 존재가 혐오적, 병적 존재로 규정되었던 과거를 지나 이제 어린 딸 새봄의 현재적 시점에서 두 여성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특별한 시선으로 다시 담기고, 연결된다. 윤희와 쥰의 관계를 다시 연결하는 힘은 변화된 현실에서 엄마의 삶을 이해하고, 그녀의 외로움을 포착한 딸 새봄에게서 나온다. 새봄의 캐릭터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던 점은 그녀의 엉뚱함과 직설적인 캐릭터 속에 담긴 엄마를 향한 사랑과 이해가 곧 윤희와 쥰의 애틋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연결점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세대를 넘어 윤희와 쥰의 사랑을 다시 연결하는 새봄의 존재는 곧 역사 안에서 '여성'이 배치된 상황과 위치를 이해하고 더 나은 변혁으로서의 삶을, 여성들의 연대와 사랑을 회복하고자 하는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역할과 그 존재를 함께 담아낸 것은 아니었을까?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시선

아직 엄마가 된 경험이 없는 젊은 나는 어쩔 수 없는 딸이기에. 사실 새봄의 역할에 많은 감정들이 이입되었다. "나, 엄마 아빠 이혼했을 때, 왜 엄마랑 살겠다고 한 줄 알아? 엄마가, 더 외로워 보였거든.."이라는 새봄의 대사는 여성이자 엄마로서의 삶을 바라보며 그 공허함을 함께 경험한 딸들만이 건넬 수 있는 위로이자 진심일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가정을 꾸릴 수밖에 없었던 윤희의 애틋한 사랑을 이해하고, 직접 이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새봄의 결심이 서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아빠가 나간 밤,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엄마를 바라보며 나 또한 '엄마는 무엇에 행복을 느낄까', '무엇을 이유로 살까', '왜 엄마는 항상 외롭고 쓸쓸해 보일까'를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는 엄마를 무작정 엄마를 웃게 만들겠다고, 행복하게 만들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었지만. 언젠가부터 엄마의 외로움은 나로 해결될 수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마의 외로움과 공허함은 사회에 배치된 엄마와 여성으로서의 삶에 내재된 여러 맥락 속에서 태동한 것이며, 그 삶에 내재된 어쩌면 아주 근본적인 외로움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윤희들을 떠올리며

엄마의 삶을 바라보며 경험한 외로움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너무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 그녀들의 삶 속에서,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던 시대적 맥락에서, '정상'이 되기 위해 빈껍데기로 살아야 했던 수많은 존재들의 삶 속에서 공통적으로 발현되는 것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자신의 꿈을 위한 도전점에서 환하게 웃는 윤희를 담는 새봄의 모습을 보며 수많은 윤희들을 떠올렸다. 잘못이 없는 우리가 서로를 마주하며 떳떳할 수 있도록, 부끄럽지 않도록. 항상 꿈을 꿀 수 있는 자유가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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