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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토리 Sep 17. 2019

[미성년] '성년'이라는 것의 무게와 감정

 이토록 섬세한 연출이라니. 감독 김윤석은 성숙하지 못한 어른들과 성년보다 성숙한 '미성년'을 그려내고, 서사의 중심에 의도적으로 각기 다른 네 여성을 배치한다. 가정에 충실한 주부인 영주와 순간의 감정과 욕망에 충실한 미희, 아빠의 외도를 알아챈 주리와 엄마의 임신을 알아챈 윤아까지. 

  단선적인 관점으로 대원은 이 모든 사건을 일으킨 주범이자 중심인물이지만 사건이 전개될 수록 대원은 주변으로 배치된다. 이 이야기는 이미 일어난 거짓과 비밀, 균열의 이야기를 마주하고 해결하고 성장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성년과 미성년의 '감정'

 영화 초반 성년과 미성년의 경계는 '감정'을 통해 그려진다. 학교에서 마주한 두 미성년은 부모의 외도와 임신의 책임을 서로의 부모에게 떠넘기는 육탄전을 통해 감정을 폭발시킨다. 우리가 청소년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동적이고도 거칠며 솔직담백한 그 자체의 방식으로 서로를 향해 소리치고 주먹을 휘두르고 머리채를 휘잡으며 비밀에 대한 충격과 원망을 표출해낸다. 

 그러나 두 미성년은 일어난 갈등과 거짓을 직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무거운 책임감을 공유한다. 윤아는 낙태계획이 없는 미희의 말을 듣고 동생을 키우려는 본격적인 계획을 세운다. 두 미성년은 육탄전을 통해 서로의 감정을 폭발시키지만 성년들보다 더 큰 무게와 책임감을 지며 성숙으로 나아간다.

 반면 두 미성년은 얽힌 실타래와 복잡한 감정들을 내면으로 욱여넣는다. 다만 지금의 상황을 직시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이를 견딜뿐이다. 대원과의 관계를 정리하며 상황을 정리하는 미희와 그런 미희를 챙기는 영주의 모습은 오히려 '성인이기때문에' 가져야 할 태도와 무게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성년'이라는 그들의 포지션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외도와 임신이라는 사실 앞에서 오히려 이 성년들은 차분하고 냉정해보이지만 사실 어찌해야 할 수 없는 혼란을 경험한다. 결국 대영은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채 도주하고, 영주 또한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미희를 찾아갈 뿐이다. "갈 곳이 없어 찾아왔다."는 영주의 대사는 이 상황을 마주한 영주의 혼란과 어찌할 수 없는 감정들을 담아낸다. 감정을 억누르는 법을 배운 '성년'이 된 그들은 '미성년'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서로의 선택을 이해하고, 서로의 존재를 위로하며 다시 성숙으로 한 걸음 나아간다. 



엄마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

 내가 주목했던 부분은 자신과 너무 다른 엄마의 선택과 삶을 응시하는 윤아의 시선이었다. 순간의 감정과 욕망에 충실한 엄마 미희와 책임감 없는 미희를 이해할 수 없는 윤아의 관계는 우리가 상상하는 모녀관계의 보편적인 규범들을 뒤집는다. 그래서 복합적인 관계의 갈래들을 다층적으로 그려낸다. 오히려 삶의 사춘기를 겪고 있는듯한 미희와 이런 미희를 케어하는 윤아의 감정선을 담아낸 연출은 단순히 미희를 비난하거나, 평가하지 않은 채 모녀관계에 대한 다른 모습을 그려낸다.  



  거짓으로 일관한 대원의 미성숙함을 네 명의 주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해결한다. 그리고 섬세한 시선으로  '성숙'과 '미성숙'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무겁지만 무겁지 않게, 어려운 주제를 단편적인 결론으로 이끌어가지 않는 그 섬세함이 영화 '미성년'이 지닌 매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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