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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토리 May 18. 2020

지선우, 거짓으로 점철된 세계를 부수는 여자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 리뷰


장안의 화제였던 부부의 세계가 끝났다. 여성혐오적인 대사와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연출이라는 논란 속에서도 부부의 세계가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거짓된 세계 속에서 진실과 사실로 대응하는 지선우의 고상한 복수에 대한 카타르시스 일 것이다. 그 솔직하고 처절한 복수 속에서 지선우는 현실의 다양한 이유로 자신을 속여왔던 여성들이 ‘사랑’과 ‘명예’라는 허상을 부수고 진실을 비춰볼 수 있도록 인도한다. 따라서 이번 글은 부부의 세계에 내제된 다양한 논란들을 잠시 뒤로 한 채 허황된 거짓들로 점철된 세계 속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고 솔직함과 거짓으로 그 세계를 부숴가는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는 수많은 선의의 거짓들로 세상을 살아간다. 사회적 자아인 페르소나는 타인과 함께 존재하는 삶 속에 녹아들기 위한 수많은 가면들을 만들어낸다. 상류층으로 대변되는 여성들은 온갖 가식과 허례허식으로 자신을 치장한 삶을 산다. 그 삶의 옳고 그름을 넘어 그들의 ‘위치’는 곧 남편의 사회적·경제적 명예와 위치에 따라 구성되고, 드라마 속 ‘여우회’는 자칫 고상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그 모임에 내재된 치열한 정치적 싸움들을 그대로 폭로한다.     


온갖 거짓과 연기로 점철된 현실에서 ‘사랑’은 가면 뒤에 감춰진 나의 진실된 얼굴과 자아, 감정들을 솔직하게 내보이는 순수하고 고결한 절대적인 그 무엇으로 의미화된다. ‘사랑’을 ‘순수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절대적인 타인이었던 대상을 세상의 중심으로 구성하고, 그 관계를 만들어가며 내보이는 자신의 진실된 감정 그 자체이다.


이태오는 ‘사랑’을 순수한 것으로 만들어가는 중요 가치인 ‘진실’을 저버림으로써 그가 가진 존엄까지도 무너트렸다. 반면 태오의 연인인 다경은 태오와의 관계를 ‘진실되고 믿음이 가득한’ 사랑으로 의미화하며 그와의 결혼을 결심한다. 다경에게 사랑은 남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소유한 자신에게 유일하게 소유욕을 불러일으킨 그 무엇이었다. 따라서 다경은 그 순수한 사랑을 유지하고 완성시키기 위해 태오에게 남겨진 선우의 발자취를 모조리 지우기 위해 노력하며, 태오와 선우의 아들까지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모순적으로 다경은 그가 믿는 순수하고 절대적인 사랑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이태오의 부인이라는 정체성을 획득하고자 선우와의 지난한 싸움을 이어간다.       

지선우는 고산병원의 간판급 의사로 부원장이라는 명예와 잘생긴 남편, 아들을 두며 완벽해 보이는 삶을 일군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가 일궈온 정체성들은 남편의 거짓 앞에서 모두 무너진다. 이런 상황에서 선우는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는다. 다만 자신을 속여온 세상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자신의 삶의 가치와 안정을 찾기 위한 복수의 길로 걸어갈 뿐이다.     


그녀가 악착같이 일궈온 세계에서 완벽해보였던 이태오는 처절하게도 찌질한 거짓말쟁이다. 하나뿐인 아들은 아빠의 외도를 인지했음에도 엄마가 이혼하지 않기를 바란다. 심지어 바쁜 엄마를 탓하고 아빠 편을 든다. 그녀의 모든 주변인들은 이태오의 바람을 묵인한 채 그녀를 속여왔다. 즉 그녀가 진실로 믿었던 삶의 안정과 명예, 누구나 부러워했던 안정적인 정상가족의 모습은 모두 거짓과 허구로 일궈진 세계였다.     


사라 아메드(2015)는 <행복한 대상>을 통해 페미니스트들을 “좋은 것으로 여겨지는 어떤 것들을 향한 정향을 공유하길 거부”하면서 흥을 깨는 존재들이라고 설명한다. 좋은 것으로 여겨지는 어떠한 것들을 향한 정향의 공유는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어울림'이라는 기호를 유지하기위한 사회적 압력이다. 그러나 어떤 신체가 자신이 놓여야 하는 자리를 거부할 때 공공의 편의와 '좋은 것'이라는 정향의 공유는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다.


이 드라마가 ‘페미니즘적 이야기를 담았다’거나 ‘담지 않았다’고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으며, 이 드라마가 ‘페미니즘적이냐 아니냐’를 이야기하는 것도 본 주장의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다만 지선우는 거짓과 허구로 일궈진 세상에서 고산시의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공유했던 가치, 즉 남성은 누구나 바람을 피며 부인이라면 이를 암묵적으로 용서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 하나만 참으면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그 가치를 깨부순다. 지선우는 그들이 가진 모순들을 폭로하며 ‘좋은 것’으로 합의되었던 암묵적인 거짓에 균열을 낸다.       

그런 복수의 와중에서도 선우는 고상함을 잃지 않는다. 남을 이간질하거나 본인이 폭력을 휘두르거나 또 다른 거짓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그녀의 복수는 그녀를 속여왔던 허무한 거짓들로 이루어진 현실에 ‘진실’을 알리는 것이다. 진실만을 말하면 용서해주겠다는 선우의 말을 무시한 태오에게 지지 않은 채 자신을 기만해왔던 추악한 세상에 그녀는 끝까지 진실을 알린다.     


그런 선우의 지원자인 현서 또한 선우로 인해 데이트 폭력을 일삼았던 애인을 떠나기로 결심할 수 있었다. 박인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녀에게 지속적인 폭력을 일삼았고, 폭력과 거짓된 세상 속에 갇혀있던 그녀는 선우를 만나 용기를 내어 폭력의 세계 속에서 탈출한다.     


태오가 여경과의 관계에서 새롭게 만들어간 ‘거짓’과 ‘비밀’들은 다경이 가진 사랑의 의미를 파괴한다. 동시에 다경의 사랑은 ‘남의 남자를 뺏었다’는 그 오명을 극복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 더 행복하고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집착과 광기로 변했다.      



13화, 선우는 다경에게 말한다. “근데 그거아니? 그런 절박함, 간절함 아무 의미 없다는거. 결혼은, 부부는, 생각보다 아무것도 아닌 것 때문에 흔들리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고 깨지기도 해.”     


이제 다경은 선우의 자리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과 함께 자신에게 보인 태오의 ‘진심’들이 선우의 대체자를 만들기 위해 조작된 ‘진심’이었음을 알게된다. 그 ‘진실’을 알게된 순간 여다경은 이 관계의 거짓된 허물로부터 벗어난다.      


복수는 모든 사건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의 결말은 쓸쓸하고, 안타깝고, 마냥 통쾌하지 않다. 깨끗하게 정리될 수 없는 부부라는 질긴 인연과 거짓을 깨는 투쟁의 과정은 두 사람의 결실인 준영이를 아프게 했다.      


그러나 그녀가 보여준 복수는 타인의 삶을 망치고, 나와 같은 고통을 겪게하려는 이기적인 복수가 아니라 ‘사랑’의 순수성과 깨끗함, 정상가정에 대한 맹목적 믿음으로 거짓된 세계를 유지하려는 여성들을 진실의 세계로 인도하는 과정이었다. 비록 세계를 부숴나가며 거짓된 세상에 복수를 한 선우의 복수 또한 완벽하지 않지만, 거짓을 직시한 순간 모순된 세상에 진실로 대응한 그녀는 그 무엇보다 고상한 삶의 방식과 태도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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