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토리 Feb 24. 2021

인간의 외로움이 향하는 연애

낭만적 사랑과 신자유주의, FWB



우연히 포털사이트 메인에 걸린 한 기사에 눈이 갔다. 코로나 19로 사람 간 접촉이 줄어들면서, 데이팅 앱의 사용량과 지출이 크게 증가했다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이 기사에 자연스럽게 눈이 갔던 이유는 나 또한 데이팅 앱을 통해 누군가를 만나고, 새로운 성적 실천을 시도해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의 외로움과 타인에 대한 갈망은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연결되고 싶다는 욕구,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에 대한 열망이 연애에 대한 욕구로 연결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현재 우리의 성적 실천과 친밀함에 대한 감각은 어디서 어떻게 해소되고 구성되고 있을까.


영화 <헤드윅> 주제가인 Origin of love는 플라톤의 향연에 등장하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사랑의 기원을 토대로 한다. 태초 한 몸이었던 인간이 벌을 받아 두 개로 쪼개진 몸을 지니며, 평생 서로의 짝을 갈구하게 된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하나뿐인 반려자, 소울메이트를 평생 갈망하는 운명이라는 것이다. 낭만적 사랑의 개념은 오랜 기간 내 가슴속에 깊이 자리했던 가치관이었고, 연애가 가진 배타성과 이성애 연애각본에 기인한 낭만성에 도취된 적이 있다. 


낭만적 사랑은 신체적이고 물리적인 관계를 넘어 정신적으로 상대와 일치하고 합일하여 온전하고 완전한 관계를 이룰 수 있다는 욕망이다. 온전한 믿음과 사랑, 그것에서 오는 안정감이 낭만적 사랑을 지향하게 만드는 토대이다. 연애를 시작하면 우리는 일상의 중심에 상대를 놓고, 새롭게 세상을 재편한다. 극적인 재편 속에서 상호적인 몰입과 헌신은 서로 간의 믿음과 안정감을 불러 일으키고 이러한 환상들은 소울메이트의 존재와 사랑에 대한 갈망을 한층 더 강화한다.   


그러나 극대화되는 신자유주의 구조 속에서 개인들은 각자도생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고, 친밀성의 양상 또한 변화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 양상이 변화되었다기보다, 다양한 방식들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한 설명이다. 낭만적 사랑이 생성하는 헌신과 안정감이라는 환상은 불안정성을 담보한다. 사랑의 열정과 헌신, 믿음은 동등하고 절대적인 양으로 서로에게 향하지 않는다. 이 배타적인 관계에 금이 가는 순간 나의 일상과 사회는 다시 재조직되어야 하고, 그 관계 속에서 느꼈던 안정은 자취도 없이 그 흔적을 감춘다. 경제적인 유동성에 적응하기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구조의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의 원리는 개인들을 경제적 자아로 환원하고, 소비자이자 경영자로서의 주체성을 강요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낭만적 사랑의 개념은 열렬히 열망하여 실현할 수 없는 개념이 되었다. 이러한 사랑이 우리에게 안정감과 행복을 주지 않을까라는 환상이 여전히 존재하면서도 사랑에 몰입하고 헌신하는 것은 이 각자도생의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허상이자 환상이 된다.


틴더 사용자들 사이에서 등장한 FWB라는 용어는 친밀성의 양식이 다변화되고 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개념이다. FWB는 friends with benefits의 약어로 주로 정기적인 섹스파트너, 연인은 아니지만 친밀한 관계를 맺는 관계로 정리할 수 있겠다. 1:1의 관계가 될 수도 있고, 다수의 파트너를 둘 수도 있다. 섹스파트너와 다른 점은 친구같은 정서적인 교류가 가능하다는 관계라는 지점이다. 섹스파트너는 섹스에 방점이 찍혀있다면 FWB는 friends 즉 친구관계에 방점이 찍혀있다. 장기적인 만남이 쌓여 연인과 같은 친밀감을 나누는 사이로 발전할 수도 있지만 시작 자체가 선을 넘지 않는,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존중하되 성적인 친밀감을 나누는 관계로 설정되기에 연인과는 다른 관계로 이해된다.


사랑의 가치에 올인할 수 없는 구조적 현실에서 등장하는 FWB 관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FWB를 두는 것 혹은 둘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이 신자유주의 구조에서 개인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확증받는 하나의 증거이다. 신자유주의 구조는 기업자로서의 주체를 추동하여 일상과 자기관리의 개념을 경영의 영역으로 끌어온다. 자신의 일상이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성적욕구를 충족하고, 친밀감을 구축하는 동시에 관계와, 욕망, 공적 영역의 일상까지 잘 관리하고 관계맺고 있다는 생각은 경영자로서의 신자유주의 주체의 자기개발의 역동을 드러낸다. 이 관계망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누군가를 선택하고 선택받아야 하는 구조에 동참하며 소비자로서 동시에 상품으로써의 경계를 오간다. 이는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고, 자신의 가치에 맞는 사람(상품)을 선택하고, 나 또한 선택되기 위해 상품으로써의 자기를 개발하는 하나의 역동을 생산한다.


이것이 기존의 연애와 다르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연애시장 또한 개인들을 하나의 상품으로써 잘 관리된 신체, 외모 자본을 통해 친밀성을 거래하는 시장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FWB가 다른 지점은 개인들의 성적 욕망을 숨기지 않고 드러냄으로써 이성애 연애각본에 담긴 지점들을 답습하면서도 비틀어내는 것에 있다. 개인의 자아를 구성하고, 인정욕구에 대한 기반이 연애, 특히나 이성애적 관계를 통해 생산된다는 것, 자본주의의 거대한 상품시장에 개인들이 소비자이자 상품으로써 거래하고 되는 현실에서 성적 행위는 반다나 시바가 그의 저서인 <에코 페미니즘>을 통해 말하듯 '그 자체로 소비와 경제적 착취의 그물에 엉키거나 혹은 평범한 생활 바깥의 신성한 도피처'가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선우, 거짓으로 점철된 세계를 부수는 여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