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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토리 Nov 07. 2019

성매매에 대한 오랜 단상

너무 쉽게 성적 서비스를 구매하는 남성문화에 관하여

알바를 찾기위해 사이트를 기웃거려봤던 여성들이라면, 우리가 얼마나 쉽게 성노동에 가담할 수 있는 세상인지 알게된다. 이제 성노동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섹스를 거래하는 것뿐만 아니라 키스방, 토크방, 보드게임을 가장한 터치방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성적 서비스를 교환할 수 있는 장으로 변모하였다.


특히 어떠한 경제적, 사회적 자본도 없는 가출청소녀들에게 이는 무척 강력한 유혹이다. 우리는 이미 영화 <박화영>에서 이 잔인한 현실을 보지 않았는가. 지금 당장의 잘 곳과 끼니가 필요한 이들을 노려 조직적으로 성매매에 가담시키는 또래 남성들과 이러한 가출청소녀들의 성을 거래하는 성인 남성들의 이야기는 이미 진행 중인 현실의 이야기이다.




성별을 떠나 우리는 모두 성매매 여성들을 쉬운 돈을 버는 하찮은 인생으로 평가해왔다. '흔한 공장을 가도 열심히만 하면 한 달에 돈 백만 원을 벌 수 있다'는 이유로, 성을 거래하는 여성들은 너무 쉽게 큰 이익을 얻는 지극한 혐오의 대상이 되어왔다. 성을 판매하는 여성들의 손에 쥐어진다고 여겨졌던 그 '큰 돈'이 왜 '큰 돈'이라고 여겨지는지, 그 '큰 돈'을 결국 주면서도 성을 사는 사람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비판과 비난도 가해지지 않은채 여성혐오는 유지되었다.


특히 성매매가 집창촌과 단란주점에서 거래되는 직접적인 성접대와 2차 문화(섹스)로 이해되었던 과거에는 성노동자들과 '일반여성'들의 세계가 마치 분리된 듯 이해되고는 하였다. 그래서 성을 판매하는 여성들은 '보통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와 철저히 분리된 존재로 여겨졌고, 명확히 구획된 집창촌이라는 공간은 '창녀'와 '창녀가 아닌 여성'을 이분법적으로 재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IMF 이후 한국에 신자유주의 물결이 일면서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사회경제구조 속에서 각자도생의 시대가 펼쳐졌다. 동시에 오히려 섹슈얼리티와 친밀감의 개념이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제 친밀감과 성적 서비스의 거래는 '집창촌'이라는 구획된 공간에서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굳이 물리적 공간을 통하지 않아도 온라인 접속과 스마트폰을 통해 너무 쉽게 만남을 가지고 성을 거래할 수 있게 되었다. 직접적인 섹스를 거래하던 과거의 양상을 넘어 애인대행이나 대딸방, 키스방, 토크방 등 유사 성행위와 친밀감을 살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의 서비스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사실은 일반여성과 창녀를 분리해온 너무나 큰 경계를 남성들은 항상 자유롭게 이동했었다는 점이다.


'남성들의 성적 욕구는 본능'이라는 혹은 '사회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이유로 그들이 구획해놓은 '창녀의 공간'과 '창녀가 아닌 여성들의 일상 공간'을 그들은 너무 자유롭게 이동해왔다. 문제는 신자유주의 이후 확대된 성적 서비스와 친밀감의 거래 형태에서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하나는 명확히 구획되어 사회의 어두운 부분으로 존재했던 '성매매 여성들의 물리적 공간'이 이제는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한 오피스텔 건물이 키스방과 대딸방 등 유사 성행위 업소로 사용되고, 이제 시공간을 넘어 온라인에서도 각종 캠방과 유튜브, 랜덤채팅 어플들을 통해 언제든지 여성의 신체를 관음하고 성을 구매할 수 있는 조건들이 마련되었다. 동시에 이런 변화 속에서 남성들이 구축해놓았던 여성에 대한 경계, 즉 '몸을 파는 여성'과 '몸을 팔지 않는 여성'이라는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점이다.


기존의 성매매 업소는 사회라는 울타리의 마지노선에서 선 갈 곳 없는 여성들만이 향한다고 생각했던 영역이었다. 그러나 변화된 친밀함의 양상과 확대된 유사 성행위 업소 안에서 성을 사고파는 것은 이제 너무나 진입하기 쉬운 영역이 되었고, 여성들의 신체와 성적 서비스의 거래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다양한 집단들이 등장하면서 이제 성매매는 일상 도처에서 너무나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가 되어버렸다.


여전히 남성들의 사회생활은 비즈니스 룸에서 행해지고, 여성이 없이 완성되지 않는 유흥문화는 다양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여성들을 조달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그리고 우리는 너무 쉽게 등록금 때문에, 가출하고 갈 곳이 없어, 건전한 알바인 줄 알고 속아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게 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제 '창녀'와 '성녀'라는 경계는 흐려지고, '창녀'에게 향했던 비난의 화살들은 된장녀와 김치녀라는 이름으로 모든 여성들에게 향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거대한 산업에 돈을 지불하는 남성들에 대한 비난을 하지 않는다. 요즘 젊은 여성들이 돈에 눈이 멀어 쉽게 몸을 팔고, 몸 판 돈으로 쉽게 명품을 사는 '된장녀'라고 비난하면서도 그 산업에 거대한 돈을 지출하는 남성들을 비난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러한 남성들의 권력과 자본을 부러워하기 바쁘다.  


이런 현실에서 '성을 파는 사람이나 성을 구매하는 사람이나 똑같이 나쁘다'는 말은 얼마나 공허한가. 모든 것이 불안전한 시대에서 안정된 믿음과 애정에 대한 우리의 욕구는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이때 만연한 남성들의 성구매 문화를 인지한 여성들에게 이성애 연애 전략은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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