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페미니즘과 나쁜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임을 밝힐 때 마다 나는 다양한 질문들을 받는다. 그들이 던지는 다양한 질문 모두 그래서 '페미니스트가 뭔데'라는 질문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는 이러한 사안들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페미니즘이라는게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페미니스트인건지 등등... 마치 페미니스트들이 동일한 생각과 노선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듯이 사람들은 항상 나에게 아주 간결하고 명확한 하나의 입장과 노선을 요구한다.
이미 본인이 생각해둔 '좋은 페미니즘'과 '나쁜 페미니즘'이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더욱 고되다. 그들은 이미 듣고 싶은 말이 있다. 메갈과 워마드는 나쁜 페미니즘이고, 메갈과 일베는 동급이며, 여혐과 남혐은 둘 다 나쁘다는 대답.
그래서 후자의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은 무척 피곤하다. 내가 메갈이나 워마드가 지향하는 운동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을 '나쁜 페미니즘'으로 정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내 말을 본인이 편한 방식으로 편집하며 "아 그래서 메갈하고 워마드는 나쁘다"는 답을 내린다. 이것은 내가 여성학을 전공한 대학원생이라는 위치와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그들은 대학원생이라는 그 권력에 기대어 자신들의 기준과 정의가 옳은 것이기를 기대한다. 아주 단편적인 사고방식이다.
반면 자신들의 의견과 같지 않다고 나를 가짜 페미니스트로 정의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에게 나는 고고하게 책상 앞에 앉아 책만 보는 가짜 페미니스트(!)일뿐이다. (누가 가짜 페미니스트가 되려고 그 돈을 써가며 페미니즘을 공부하는건지 알 수가 없다....) 페미니즘의 오랜 역사와 그 지향점을 안다면, 사실 '진짜 페미니즘'과 '가짜 페미니즘'을 나누는 것 자체가 지극히 정치적이고 편파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페미니즘
학문으로서 페미니즘은 '누가 지식을 만드는가?', '지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하며 지식의 가치중립성과 객관성에 관한 기존 학문의 개념에 도전해왔다. 페미니즘은 지식생산의 주체에서 배제되어 온 여성의 경험을 통해 지식을 재구성한다. 성별이분법은 인간이 세상을 해석하는 가장 기초적인 토대이다. 따라서 페미니즘은 사회의 가치와 규범, 역할, 제도 등이 성별이분법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음을 드러내고 사회 체제와 억압의 문제를 젠더를 설명하고자 한다.
페미니스트 연구는 여성의 삶으로부터 출발하며, 여성 또는 여성의 삶에 대한 남성중심적 설명에 도전하고, 지식을 구성하고 기록해온 커다란 역사(HISTORY)에 균열을 내기 위해 작은 역사(HERSTORY)에 집중하여 새로운 지식을 구성한다.
절대적 객관성과 합리성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과학적 지식조차 가부장적 체제 속에서 형성이 된 믿음이기에 완전히 ‘가치 중립적’일 수 없다. 따라서 페미니스트 연구는 실증주의 패러다임을 구성하는 객관성, 가치중립성, 보편적 진리에 대한 개념 틀을 비판하고, 지식에 내제된 지배적 가치관과 위계를 읽어내며, 연구의 정당성과 축적과정을 다시 평가하며 ‘과학적’이라는 개념 자체를 전복하고자 한다.
가령 사회과학적 연구 안에서 우리는 과학적 통계가 가장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연구법이라고 믿지만, 이 또한 해석 과정 안에서 연구자의 관점이 들어갈 수 밖에 없으며, 가설 자체가 왜곡되고 차별적이라면 그 결과 또한 차별적이고 왜곡된 결과가 도출될 수 밖에 없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6068 / 우리가 가장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 기술에서 나타나는 성차별의 예시이기도 하다. 이들이 평가하는 데이터 자체가 성차별이기에 그 결과 또한 왜곡될 수 밖에)
페미니스트 입장론
입장론은 연구자가 특정한 사회적 조건과 맥락 속에서 분리되어, 중립적일 수 있는 위치는 없다고 주장한다. 연구자의 참여적 가치관이 연구결과의 객관성을 보장한다고 보기 때문에 연구자의 사회적 정체성은 오히려 신뢰할 수 있는 연구결과를 낳는데 중요한 변수가 된다. 페미니스트 입장론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지배자의 위치에 놓여있던 남성들만의 관점에서 지식이 전개되어 왔다는 점을 비판하며, 역사적으로 남성과 여성이 놓인 상황의 차이들이 존재했다는 점을 주요 논거로 삼는다. 따라서 성별로 위계화 된 사회 속에서 구성된 여성들의 세계를 보는 눈은 페미니스트 연구의 자원이자 원천이다.
이때의 여성은 생물학적 요소를 통한 단일한 정체성 개념이 아니라, 가부장제도의 역사 안에서 ‘주변’으로 구성되어왔던 그 ‘경험’의 총체이다. 성별 이분법은 인간이 세상을 해석하고 바라보는 가장 기초적인 토대로 구성된다. 그 속에 내재된 성별 분업과 위계는 성별의 경험을 다르게 조직한다. 이분법적 세계관의 토대를 이루는 성별 위계가 가시화됨으로써 우리는 다른 경계의 문제로 시각을 확장하고 성찰하는 가능성을 열 수 있다. 따라서 페미니스트 입장론은 이등시민으로 배치되어온 위치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억압과 차별에 도전하고 주변부에 배치되어온 사람들의 시각에서 다시 세상을 해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페미니즘은 하나의 입장으로 고정될 수 없으며, 개인이 위치한 사회적 환경과 조밀한 경계와 위계의 문제를 함께 조망해야 한다. 우리가 생산하고 사고하는 지식들은 모두 다 부분적이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한 '중립적인 사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여성들에게 씌여진 억압과 차별의 문제를 직시하기 위해 우리는 오히려 더욱 구체적인 맥락들에 집중하고, 다양한 경험을 전달할 수 있는 다양한 이론과 언어를 쌓기위해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페미니스트는 나와 다른 '여성'이나 다른 사회적 소수자들을 타자화하지 않고 그들이 놓인 구체적인 맥락과 현실에 접근하고, 얽히고 섥킨 다양한 위계와 경계를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다.
그 맥락에서 페미니즘은 진짜 페미니즘과 나쁜 페미니즘을 결정하기 전에, 이를 결정하는 주체는 누구이며, 무슨 기준으로 판가름 나는지 다시 질문하는 것이다. 명확히 'yes or no'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시 '정답'과 '정답' 아닌 것으로 모든 질문을 함축한다. 하나가 '좋은 것'으로 규정되는 순간 이에 속하지 않는 모든 것은 '나쁜 것'이 된다.
어떠한 페미니즘 운동을 ' 여성'을 위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하고, 어떠한 페미니즘의 방향을 남혐과 동일한 것으로 함축하고, 어떠한 페미니스트를 나쁜 페미니스트로 규정하기 전에 본인의 그러한 생각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차별과 위계의 문제를 돌아보았으면 한다. 나에게는 좋은 페미니즘과 나쁜 페미니즘을 구별하며, 워마드와 메갈은 똑같이 나쁘다고 단언하며 페미니스트를 검열하는 당신이 가장 해로운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