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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토리 Jun 21. 2021

[크루엘라] 권력과 힘의 역사를 뒤엎는 여자


'안녕 잔인한 세상이여!'와 '킬러본능'


영화 <크루엘라>는 디즈니 원작 <101마리의 달마시안> 을 각색한 작품이다. 영화 관람 후에야 우연히 보게 된 한국판 포스터에는 아주 흥미로운 두 가지의 메세지가 담겨있었다. 바르네스는 이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 즉 권력을 얻기 위해서는 '킬러본능'을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영국 패션계를 주름잡는 대표적인 인물로 다른 디자이너들의 노동을 착취하고, 아이디어를 갈취하며, 경쟁상대를 모두 제거하는 기존의 경쟁 사회의 규칙들을 충실히 이행하며 최상층의 위치에 올랐다. 


크루엘라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는 '안녕 잔인한 세상이여'를 외치며 기존의 사회를 '잔인한 세상'으로 명명한다. 이 문장은 기존의 세계와 이별할 것을 암시하며 크루엘라가 새로운 방식으로 힘을 쟁취할 것을 예견한다. 큰 틀에서 본 영화는 바로네스와 크루엘라의 투쟁을 그려낸다. 이 대립은 힘과 권력을 얻기 위해 소위 '나쁜 년'이 되어야만 했던 기존의 역사와 규칙에 정면으로 대치하는 크루엘라의 모습을 통해 동시에 우리에게 '힘'과 '권력'이 무엇으로 상상되는지 다시 질문한다.



성녀와 창녀의 이분법


역사적으로 여성에 대한 이분법은 여성들을 이분화하여 '보호받아야 하는 여성'과 '보호받지 않아도 되는 여성'을 분리하는 정치적인 방식으로 작동해왔다. '성녀'의 위치에 놓인 여성들은 보호받아야 하는 여성이 되는 동시에 자신들이 가진 모든 욕망을 거세당한 채 남성들을 보필하고, 돌봄노동을 전담하는 성녀 그 자체로서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반대로 '창녀'의 위치에 놓인 여성들은 이러한 성녀의 위치를 거절하고 욕망을 드러내는 여성들에게 전가되었던 전형적인 젠더호명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역사 안에서 자신의 욕구를 적극적으로 분출하고, 권력을 욕망했던 여성들은 소위 '나쁜 년'으로서 자신을 정체화하며 자신에게 부과된 성녀의 역할과 호명을 적극적으로 부정해야만 했다. 피로 얼룩진 권력 투쟁의 과정은 타자와의 경계를 구축하고, 약자를 착취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나쁜 년'이 된 여성들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이 폭력의 과정에 편입되며 기존의 구조를 공고히 하는 것에 일조하기도 했다. 이러한 구조 안에서 권력을 획득한 바로네스 역시 폭력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위치를 구축했으며, 자신의 권력과 힘을 위협하는 크루엘라를 제거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활용한다.  


크루엘라는 자신이 가진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면서도 기존의 권력투쟁을 비틀며, 권력을 구성하는 개념을 새롭게 써내려간다. 영화 속 크루엘라에게 붙어진 '악'이라는 표식은 권력과 재능, 욕망을 솔직하게 표출하는 여성을 향해 붙여지는 편견과 억압을 의미한다. 크루엘라는 이러한 사회적인 구조에 반기를 들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고 '나다움'과 '다양성'으로 선과 악의 이분법적 양 극단을 넘어선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나다움'과 '다양성'으로 만들어가는 힘의 연대


영화 <크루엘라>는 기존의 <101마리 달마시안>을 각색하며 시대적 변화에 따른 다양성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배치하였다. 크루엘라의 적극적인 조력자로 등장하는 아티는 기존의 이분화된 성별규범과 경계를 흐리며 적극적으로 '나다움'을 표출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크루엘라의 오랜 친구로 등장한 아니타 달링은 흑인 캐릭터로 그려지며, 크루엘라의 가족인 호러스와 재스퍼도 사회 변두리에서 소외된 채 생계를 위해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존재들로 등장한다. 


크루엘라는 이들과 함께 더럽고, 빈곤하며,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모든 이들과의 연대를 통해 '힘'을 획득해왔던 기존의 구조를 적극적으로 뒤흔든다. 소위 '쓰레기'로 여겨지는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그 개념을 비틀며 화려하게 쓰레기 차에서 등장한 이 장면은 이러한 연대와 위계, 힘을 구축하는 방식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으로 읽을 수 있다.     


'백인 공주'를 내세우며 인종과 여성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을 활용해왔던 디즈니의 작품들은 시대적 변화 앞에서 그 오랜 규칙들을 깨나가고 있다. 다양한 인종의 공주들을 가시화하고, '왕자'를 기다렸던 공주에서 자신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까지 여성들에 대한 다양한 롤모델을 생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다수의 작품들이 백인 주인공을 내세운다는 점, 크루엘라 역시 두 명의 주요한 주연들이 모두 백인 여성들이라는 점, 소수자들이 크루엘라의 조력자의 위치로 제한된다는 점에서 다소 아쉬운 한계들은 명확히 남아있다.



영화 크루엘라는 힘과 권력을 얻는 방식 안에서 구성되는 위계의 개념과 권력을 얻는 기존의 방식들을 비판하며, 힘에 대한 상상력의 지평을 확장한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은 페미니즘을 '힘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힘'을 인식하는 인식론 그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힘과 권력에 대한 개념, 이를 쟁취하기 위한 과정을 비판하지 않는 것은 권력의 개념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위계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 권력의 최상층을 획득하는 주체들만 교체되는 것은 권력의 상단부를 유지하기 위해, 착취되고 제거되고 약자의 위치에 명명되어야 하는 권력의 습득방식과 개념, 근원적 토대 자체를 전혀 흔들지 않는다. 즉 힘과 권력을 상상하는 우리의 패러다임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권력의 최상층을 차지하는 주체만 교체될 뿐, 약자를 착취하고 위계를 구성하는 기존의 토대는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이 질문은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와도 연결된다. 우리가 무엇을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로 상상하는지, 유토피아에 도달하기 위해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이 필요한지에 따라 유토피아로 향하는 방법론과 대안이 다른 방식으로 구성된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인가? 권력의 상위층에 더 많은 여성을 보내는 것이 목표인가? 여기서 여성을 강하게 만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우리가 얻고자 하는 '힘'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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