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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백살공주 Sep 13. 2024

프란다즈의 개~~

프란다즈의 개, 를 아십니까?

아마도 국민학교 사학년 가을에 있었던 일이랍니다.

제가 일학년 때 혼자되신 어머니께서 책은커녕 공책이나 연필조차도 새것을 사 준적이 없었기에 동화책 같은것은 우리집 방에서 굴러다닌 적이 없었답니다.어머니는 겨울이면 마치 중환자처럼 앓아 누우셨고 저는 두살 터울의 여동생과 남동생을 챙기며 땔감을 해 나르느라 달리 책을 접할 시간도 없었답니다.겨울 저녁때면 마른 풀이라도 뜯어다가 아궁이에 연기라도 쬐어야 설잠이라도 잘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사학년 여름 방학때 동화책을 알게되었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방학때 책 좀 읽으라며 마을 단위로 동화책을 한 권씩 배분했었습니다. 우리동네는 네명의 학생이 있었고 책을 제가먼저 읽기로 했답니다. 제목은 [사랑의 학교]였었지요. 그 책을 내가 다 읽기도 전에 수해가(1972년도의 큰 수해) 나서 작은 개울가에 웅크리고 있던 우리 초가집은 가재도구를 건질새도 없이 흔적도 없이 떠내려 갈때 그때 그 책도 함께 떠 내려 갔었지요. 방학이 끝나고 반납을 해야했으나 감감 무소식처럼 버텼답니다. 그 동화 책으로 동화에 눈을 떳음에도 불구하고 죄책감에 학교책은 제게 오랫동안 그림에 떡이되었답니다.


그해 가을에 추억으로 남기기도 벅찬 사건이 생겼답니다. 메뚜기 잡기와 벼이삭을 줍던 때 였었답니다. 우리 마을의 면소재지는 그 당시 십킬로 이상 떨어진 먼 곳 이었는데 서커스가 들어와서 공연을 벌였었답니다. 그 사실이 우리마을 골짜기 골짜기에도 퍼졌었지요. 어린 마음에 무척이나 가고싶었답니다. 엄마 손길에 이끌려 다녀온 아이들의 자랑에는 신기함의 극치였었답니다.



어느 일요일 엄마는 아침일찍 벼베기 날품팔러 가셨고 저는 기회다 싶어 엄마가 감춰둔 백원짜리 종이돈을 꺼내 면소재지를 걸어서 갔었습니다. 멀고 먼 길이었음에도 주머니에 꾸겨진 그 백원짜가 원인모를 자신감을 심어주었었답니다. 세상이 다 내꺼 였었지요. 막상 도착하고 보니 먹거리들이 지천이었고 천막으로 가려진 써커스는 자연스럽게 관심밖으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아까운 돈이어서 군것질 조차도 어려웠었는데 이상하게도 문구사를 겸한 서점에는 선뜻 발을 들여놓고 말았었지요. 그 때 눈에 띤 책이 [플란더즈의 개] 였었지요. 아마도 제목이 동물을 상징했었기에 호기심으로 고른 책이었었지요. 백원자리 지폐를 주니까 칠십원을 거슬러 주시더군요. 눈을 딱 감고 십원어치의 찐빵을 샀었씁니다. 고픈배를 채우고도 남을 양이었습니다. 두 동생들이 생각나서 조금만 베어물고 비닐봉지에 꼭꼭 쌌습니다. 입에 살살녹는 맛이었습니다.


참고로 우리 동네는 제원군 백운면에서 동강의 삼분 일 정도 크기가 되는 물길을 따라 걸어 십킬로 정도 내려오면 우리 동네에 닿는답니다.그 길을 따라 걸으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이지 그 내용은 바로 저의 이야기와 진배없었답니다. 동네에서 최고의 가난,겨울이면 앓아 누우시던 엄마,가장 풍요롭게 사는 같은반 정숙이에게로 향했던 짝사랑등은 바로 저의 이야기로 귀결되었었지요. 세상을 이기지 못하고 네로가 루벤스의 그림앞에서 가냘픈 어께를 뒤로하고 죽는 장면에서 한 없이 울면서 걸어내려 왔답니다. 서산에 지던 햇님조차도 내가 사랑하는 하늘에 붉은 눈물을 하늘가득 뿌려 주었답니다.


그날 저녁이었습니다.벼베기에서 돌아오신 엄마는 곧바로 돈이 없어진 것을 눈치채셨고 또 범인이 저임을 대번에 눈치 채셨었답니다. 저는 표정이 용의주도하지 못했었거든요. 다짜고짜 매를 들고 제가 까무렇칠 정도로 때리셨답니다. 까닭모를 설움들이 몰려와서 악머구리 처럼 서럽게 우니까 겁에 질린 두 동생들도 함께 울었었지요. 울다지쳐 골아 떨어진 나를 엄마가 깨웠습니다. 밀가루만 동동뜨는 수제비라도 먹고 자라고......그리고 물으셨습니다. 그 훔친돈을 어디에 썼냐고.얼른 플란더즈의 개와 남은돈 그리고 두 동생들 주려고 남겨왔던 빈 찐빵봉지를 엄마앞에 내놓았었지요. 그리고 업드리고 흐느끼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일체의 품목들을 점검하신 엄마의 얼굴은 당혹감이 언뜻 지나갔습니다.그것으로 제 죄는 씻은듯이 앞 개울물에 떠 내려갔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풍요롭게 가을해는 떠 올랐습니다. 까닥없이 저의얼굴을 마주보지 못하시는 엄마의 얼굴 눈주위는 아버지가 돌아가셨 을 때 만큼이나 퉁퉁 부어있었습니다.


아, 어머니 ........


이글은 2005년 가을에 씀

2010년 여름에 고인이 되셨지요.

글쓰기의 화두는 언제나 어머니와 유년이 많네요.


YouTube에서 '[금주의 책]   프란다즈의  개, 를 아십니까?  방랑객의 유년에 명작이었기에 추억을 끄집어 내다.' 보기

https://youtu.be/THYnqsSX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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