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함의 인기와 쇼크사
이제 내 뱃살의 체지방, 내장 속에 체지방들도 내성이 생겼거나 아님 몇 번의 시도 속에 근육으로 굳어져 버렸거나 아니면 몸 주인의 늑대소년급 헛빵 같은 노력에 몇 번 속고 나니 진정성 있는 시도를 깔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지난여름에는 급기야 산티아고 순례의 길 걷기를 거창하게 버킷리스트 순위에 올려놓을 정도로 도전의 강도를 높였다. 따라서 모든 겨자씨 정도의 결과에 기죽지 않는다. 결국 태산같이 창대한 결과를 창출할 테니까.
2007년도에 있었던 웃지 못할 타인들이 적극적인 내 몸 살 빼기 시도를 했고 정말 쇼크사만큼 재미난 실패가 있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그때 내 무게는 119였다. 청주 남성합창 단원이었고 미래에셋에서 전국 톱클래스 최상위 영업메니져로 전설을 이루고 있었다. 그때 액체로 된 제품만 마시며 열흘정도 비우기로 살을 뺀다는 S랜드,라는 알려진 브랜드의 방판 회사가 있었는데 유독 청주에서 번성을 했었다. 당시 S랜드 청주지점장 한 달 수입이 이억이니, 삼억이니 소문이 대문으로 퍼져 나갔고 많은 사람들이 그 방판 회사로 몰려들었다. 그 지점장은 늙으신 아버지의 차도 BMW로 사드렸고 한 달 용돈을 오백만 원씩 준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S제품이 살 빠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확연한 데다가 그런 돈까지 무더기로 버는 소문까지 퍼지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 방판에 뛰어들었다.
그때 내 지인들은 그 S제품에 효과를 습득하고 나면 뚱뚱한 나부터 찾아왔다. 내 몸을 눈으로 훑어 내리며 백만 불짜리의 몸이라는 거였다. 허락도 없이 옷을 벗기곤 사진을 찍었다. 복용 전의 모습을 찍고 열흘 복용 후 다시 찍으면 확연해진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오십만 원 정도 되는 비싼 제품을 돈은 안내도 되니 열흘만 밥 먹지 말고 먹어달라고 사정을 했다. 뱃속 체지방을 태워 낸다는 거였다. 하나같이 다들 막무가내였다. 백만 불짜리 몸이니 빌려 달라는 그들의 눈빛에 꼭 뭐가 씐 것 같았다. 단호하게 거절하기도 그렇고 제품 오십만 원 정도를 공짜로 준다니 못 이기는 척 받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래에나 나는 공짜라면 날아오는 미사일도 받아먹을 테니까. 그러나 그들이 나를 너무나도 모르는 게 있었다. 나는 굶는 것을 못한다. 몇 번 시도는 해 보았지만 두 끼를 굶는 게 한계였다. 암튼 몆 사람이 그렇게 나를 괴롭혔다. 그 당시 제품을 놓고 가면 시도는 해 보지만 허사였고 뚱뚱한 몸 덕분에 제품만 거실에 쌓였다. 나중에는 거절을 해도 놓고 가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그때 살을 뺄 생각이 별로 없었고 또 그 돈 번다는 소문에 쥐뿔도 관심이 없었다. 그 회사에 친한 친구 한 명도, 친한 사촌 동생도 들어가서 집요하게 내게 매달렸지만 나는 사둔네 팔촌집처럼 관심이 쥐뿔도 없었다. 나는 그때 최고의 미래에셋 청주지점에서 정점에 올라 있을 때였다. 그런데 최고의 강자가 아주 기발한 제안을 들고 내게 나타났다. 수원에서 그 S회사 상무까지 실력으로 올라간 지인이었는데 이미 내게 도전해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에게서 나의 정보들을 다 파악하고 다가온 사람이었다. 내가 살 빼는 일과 그 회사에 별관심 없는 것까지 파악을 하고 온 게 분명했다. 수원에서 일부러 심야에 집까지 찾아왔다.
탁자에 S제품 보다 먼저 돈다발을 탁자에 올렸다. 눈빛도 반짝반짝 살아있었고 돈도 어느 정도 벌고 있는 폼생폼사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열흘만 자기가 주는 S제품을 먹으며 밥을 굶어 달라는 거였다. 하루를 굶을 때마다 십만 원씩 해서 열흘 치 백만 원을 놓고 간다는 거였다. 기발한 제의에 나도 놀랐다. 살도 빼고 비싼 제품도 받고 현금일당도 하루 십만 원씩 받으니 도랑치고 가재 잡고 논에 물도 얻는 일이었다. 하다가 실패하더라도 개의치 않는다는 거였다. 돈은 얼마든지 벌고 있다는 당당함이 있었다. 조건이 일타 세 쌍피 이상이니 덜컥 수락을 했다. 기세 등등 한 지인인 상무는 나의 수락에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이었다. 그래 네가 성공하면 나는 돈방석이다, 하는 게 눈에 보였다. 나도 도전해 보고 싶은 동기들이 생겨났다.
그다음 날부터 바로 굶고 물로 된 S제품만 먹기 시작했다. 하루 굶는 데 성공하고 그 백만 원에서 십만 원을 꺼내 쓰는데 기분이 좋았다. 내 몸 어딘가 살도 뭉텅뭉텅 빠지는 기분이었다. 이틀째부터는 달랐다. 배가 고프기 시작했고 눈이 십리는 들어가는 것 같았고 길에 돌들도 빵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버티고 삼일째 접어들었다. 수원에 그 상무는 매매일 전화로 체크하며 닷새까지만 버티면 된다며 칭찬에 칭찬을 침이 마르도록 했다. 그러나 나는 운전조차 힘들 정도로 기력이 없었다. 무엇이든지 다 음식으로만 보였다. 그래도 그 삼일은 넘겼다. 나흘째 되는 저녁에 일이 발생했다. 남성찹창단 단원중에 나하고 친한 단원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단체 조문을 가는 거였다. 나는 보이는 모든 것들이 다 음식으로 보였고 어지러워 운전대 잡기도 힘들었다. 장례식장 가는 것도 택시를 이용했다. 장례식장의 음식들이 나를 미치게 했다. 조문을 마친 단원들이 먹기 시작하는데 나는 어지러움을 느끼면서도 그 자리를 피하기 위해 밖으로 나오는데 충북대 병원 의사로 있는 합창단원 친구가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나흘을 굶은 게 확연히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나흘째 굶고 있는 사연과 빈혈 같은 어지럼증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 친구는 나의 왕성한 식탐을 늘 부러워할 정도로 나를 잘 알았다. 나를 똑바로 보더니 정색을 하며 "이 친구야 당신 같은 체구는 잘못하면 쇼크사 일어나. 쇼크사 알아??"
울고 싶은데 뺨 때려 주는 거였다. 지방의 최고인 대학병원 의사가 하는 그 쇼크사라는 말은 내게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그렇지 않아도 쓰러질 판인데 의사가 경고를 하니 겁이 덜컥 난 것도 사실이다. 내가 지금까지 장례식장에서 먹은 음식 중에 그날 먹은 음식이 최고로 맛있었다. 그날 그렇게 무너졌다. 그런데 상무도 꿈이 날아가는 걸 예감했는지 내가 나흘 비운배를 폭식으로 채우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나는 내 친구 의사가 쇼크사 진단을 내려 부득이 중단을 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통화를 하는 상무에게서 꿈이 깨져나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몆 번이고 쇼크사 경고를 무시할 수 없었노라고 이야기했다. 너무나 미안해서 백만 원을 채워서 곧바로 넣어 주었다. 제품은 그 뒤로 그냥 밥을 먹으며 소비해 줬다. 그게 도리인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돈이 걸린 살 빼기도 실패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만약 성공을 했다면 그 상무나 또는 내가 백만장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요즈음도 살 빼기 제품이나 시스템을 만나는 사람들은 나를 찾아온다. 그것도 전국에서 온다. 다들 한결같이 백만 불짜리 몸이라는 거창한 말들을 하면서 온다. 그래서 오지 말라는 뜻으로 다시 게재한다. 멀리서 오면 경비 깨지고 제품 뺏기고 시간까지 뺏기니 손해가 태산보다 크다. 그리고 나는 그대들 꼭대기에 있다. 요즈음 관심사는 무심천에 내 살을 이체시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