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파 먹은 빡빡머리 이야기

by 오백살공주

쥐 파먹은 빡빡이 이야기

나는 머리를 오래 길렀다가

한 번에 아주 짧게 깎는 습관이 있다.


보통 두 달에 한 번쯤 머리를 깎는다.


그래서 어느새 꽤 길어져 버린다.


머리를 감을 때마다 번거로워지면

아, 이제 깎을 때가 됐구나 생각하며

단골 미용실로 향한다.

미용실 주인은 늘 말한다.

“한 달에 한 번쯤 오시면 훨씬 보기 좋을 텐데요.”


나는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

십여 년째, 두 달에 한 번 와도

늘 단정하게 깎아주니 그걸로 충분하다.


머리를 깎을 때마다

아주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빡빡 대머리를 깍던 그 시절.

내가 태어난 동네는

거의 화전마을이었다.


골짜기마다 집이 흩어져 있었고

한두 집씩 겨우 살아가던 산골이었다.


옥수수밥이 주식이던 시절,

뒷집에는 머리 깎아주는 분이 계셨다.


돈 대신 옥수수쌀이나

말린 고추를 받고

안방에서 머리를 깎아주시던 분이었다.


그 시절 아이들은 거의 다 빡빡머리였다.


쌀밥 먹는 몇몇 집 아이들만

상고머리를 했다.

상고머리는 참 예뻤다.

윗머리를 정갈하게 남기고

옆과 뒤를 말끔히 정리한 머리.

빡빡이 소년들에게

상고머리는 작은 꿈이었다.


우리 집은 어머니 혼자

우리를 키우셨다.

머리도 남들보다 늦게 깎았다.


더벅머리로 자라다

한 번에 빡빡이가 되곤 했다.

곡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머리 깎는 날이면

없는 살림에 곡식을 챙기며

손을 떨었다.


어쩔 땐

가위로 직접 깎아주시기도 했다.

그때 남는 가위 자국이 있어

꼭 쥐가 파먹은 흔적 같아서

나는 죽기보다 싫었다.


따가워도

이발사님의 기계가 좋았다.


겨울 어느 날 밤,

그 댁 부엌에서 불이 난 걸

내가 먼저 발견했다.


“불이야!”


덕분에 초가집이 다 타는 걸 막았다.


다음 날,

이발사님이 나를 부르셨다.


“고맙다. 오늘은 공짜로 깎아주마.”


처음으로

내 힘으로 머리를 깎는 날이었다.


머리를 다 깎고

거울을 보여주셨다.


나는 깜짝 놀랐다.

상고머리였다.

그토록 바라던 머리였다.


단정하고, 참 예뻤다.


그런데 나는 울상을 지었다.


“다시 빡빡이로 해주세요…”


이발사님은 이해하지 못했다.


“왜? 소원이잖아.”


나는 울며 말했다.

“상고머리는…

금방 자란단 말여요…”


머리가 빨리 자라면

어머니가 또 고생하실까 봐

그게 더 걱정이었던 것이다.


이발사님은 웃으며 말했다.


“참 기특한 녀석이네.”


그리고 다시 빡빡이로 깎아주셨다.

그 뒤로도 몇 번,

공짜로 깎아주셨다.


“너는 커서 크게 될 놈이야.”


크게 성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는 나름대로

바르게 살아가는 중년이 되었다.


키는 185cm,

몸무게는 116kg.


몸만큼은

정말 크게 자랐다.


그리고 아직도

두 달에 한 번 머리를 깎는다.

습관이다.

비용이 아까워서이기도 하고. ㅎㅎ


오늘은 청주에 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고, 하얀 종이배의 꿈, 에세이집에 있는 글들을 압축해서 쓰는 중이다. 내용은 오래전에 발표된 것들이다. ㅎㄹ


올 가을이나 겨울에는 북유럽 오로라,

내년이나 후년엔 마추픽추와 우유니 사막,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남극부근 빙하녹는 광경을 꿈꾼다.


암튼 늘 꿈꾸는 인간이라 능동형 인간이다.


잠시 머리를 식히며

유년의 한 장면을 꺼내본다.

내 삶의 에너지는

기억과 여행과 미래에서 나온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애린 흔적을 남긴다.


영원한방랑객

하얀종이배의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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