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바라기
봄비가 밤사이 내린다
지난 겨울의 시린 날들이
빗방울로 맺혀
유리창을 타고 흐른다.
몸부림으로 살았어도
회한은 물이 되어 고이고
육십사 년의 봄까지
걸어온 시간들이
깨끗한 봄물로 씻겨 내려간다.
폐지처럼 구겨진 날들,
뒤돌아보면
그래도 내 것이었던 시간들.
비 내리는 새벽,
유한하게 다가올 남은 생을 생각하며
메마른 날들 위에
나만의 꽃생명 음표를 하나씩 그려본다.
봄비의 장단에 맞춰
조용히, 오래 고민한다.
욕망보다 작았던 결과들,
왜소해진 어깨 위로
남자만의 고독이 스며든다.
그 서러운 덩어리가
창문에 부딪혀 파문을 그린다.
그때
산불지킴이들이 떠오른다.
타들어가는 산을 지키듯
누군가는 오늘도
세상의 불씨를 막아 서 있겠지.
인간이기에 감당해야 할
절대의 고독,
흐린 하늘 아래 가득하지만
봄비는 말없이 쏟아진다.
삶을 반추하는 슬픔도,
다가올 날들의 희미한 기대도
이 비 속에서는
잠시 젖어 조용해진다.
먹은 나이보다
젊은 나이 속으로 스며드는 새벽.
그리운 이들의 환영이
차창 위 빗물로 흘러내릴 때
괜한 산불 걱정도
오늘만은 접어둔다.
적어도 며칠은
저 봄비 속으로
지구촌에 터진 전쟁들마저
젖어 멎기를 바란다.
타들어가던 대지가
화들짝 웃듯,
산불감시원들도
오늘은 깊은 잠에 들기를.
그리고
지구촌의 화염도
이 봄비에
꺼지기를.
나는
오늘
봄비 바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