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욕심과 판단의 잔인한 결말
이런저런 생각을 할 새도 없이, 새로운 프로젝트 제안이 들어왔다.
여느 날과 같이, 슥- '현영아, 이번에 이런 게 있는데~'라는 팀장님의 말씀에서 시작되었다. 너무나 하고 싶었다. 체력적으로 지쳐있는 팀원들의 상황을 잘 알기에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았고, 내가 추석 연휴를 포기하고 제안서를 써야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럼에도, 추석 연휴를 반납하고 혼자 제안서를 작성하는 일은 너무 재미있었다. 이 제안서가 호평을 받아도 혹평을 받아도 뿌듯할 것 같았다.
추석 연휴가 끝난 후 알게 된 잔인한 사실은 제안서를 작성한다는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
추석 연휴가 끝난 후, 진행되고 있는 상황은 내 생각과 상당히 달랐다. 팀장님은 제안을 전문적으로 작성하는 팀과 이미 추석 연휴 전 1차 컨택을 한 상태였고, 나에게 상황을 공유해 주지 않으셨다. 연휴 도중 제안 건에 대해 한 번의 연락도 없었던 팀장님은 연휴가 끝나자마자 몸이 좋지 않다는 말씀과 함께 재택근무를 하셨고, 메신저를 통해 이 상황(타 팀과의 제안서 협읍)을 공유하셨고, 팀장님은 나 혼자 회의에 들어가라고 하셨다.
세상에, 대학교 팀플에서 혼자 모든 것을 하고, 팀원 모두가 A+를 받았을 때도 이런 감정을 못 느껴봤을 것이다. 팀장님이 회사에 안 나오신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음속으로 욕을 해도 상황 해결이 안 되고, 자꾸 서러움이 마음속부터 올라왔다. 아무것도 못할 지경이 되었고 회의실을 빌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다른 프로젝트의 일들을 처리했다. 그때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내가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는 것-이었다. 그냥 받아들이면 되지, 쿨하게 생각하면 되는데 왜 힘든지 정확한 이유를 말할 수 없었다. 그냥, 정말 그냥 서러울 뿐이었다. 서러웠다는 표현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어벌쩡하게 상황이 넘어갔다. 오전을 그렇게 보내고, 점심에 혼자 커피를 마시러 갔다. 커피를 마시며 드라마를 봤다.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사무실에 다시 오니, 파트장님이 무슨 일이냐- 물어보셨다. 이야기를 하는데 다시 서러워졌고, 내가 왜 또 서러운지 모르는데 눈물이 자꾸 나려고 하고,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다시 회의실을 예약했다. 오후도 회의실에서 종일 일했다.
문제의 제안 회의도 들어갔다. 나는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는데 이 상황을 모르는 타 팀원들과 회의를 해야 하고, 온라인으로 회의에 참석한 팀장님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나는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고, 이성적이지 못한 나를 원망했고, 회의에 열심히 타 팀원분들에게 너무 죄송했다. 정말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일에 대해 조언이 필요해, 친하게 지내던 본부장님과 면담을 했다. 본부장님은 차근차근 이 일을 설명해 주셨고, 내 편을 들어주지도, 팀장님의 편을 들지도 않으셨다. 객관적인 조언이 감사했고, 어느 정도 감정의 응어리가 해소되었다.
그렇게 1주일을 회사를 다니다 팀장님과 면담을 했다. 사실, 면담을 괜히 했다는 생각도 했다. 팀장님은 내가 무엇인가에 기분이 상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1주일 동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는 것이 아니냐-, 일에 있어 잘못한 부분은 없다- 라는 그런 말들. 이해할 수 없는 답변들로 팀장님에 대한 기대를 포기했고, 내 마음도 많이 정리된 것 같았다.
- 아, 내가 지금 겪는 일은 정상이 아니고, 나는 정말 운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았을 때 드는 의문점은 하나다. 나는 왜 그토록 서러웠을까? 이 부분에 대해 정확한 문장으로 정의 내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 감정은 무엇이었는지, 나는 무엇에 실망했는지. 이 부분은 내게 평생 숙제로 남을 것 같다.
※ 해당 글은 2020년에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