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착 붙어버린 나의 우울에 대하여
‘오늘 상담에 대한 소감을 말하고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어떠셨어요?’
‘글쎄요, 저는 언제 빨리 좋아질까요?’
사람들은 자신이 우울하다고 종종 말한다. 우울해- 재미가 없어- 라는 말을 입에 달고 나날들을 보내왔던 나였지만 이번에 찾아온 우울은 달랐다. 놀고 싶은데 지인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기 시작한 지 십 분이 채 안돼서 집에 가고 싶고, 혼자 있으면 사람들과 놀고 싶고, 변덕스러운 마음이 시작이었다.
이런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부정했지만, 심각성에 대한 전조 증상은 있었다. 술을 잔뜩 먹고 집에 가면서 친한 지인들에게 울고불고 힘들다고 난리를 친다던지, 헤어진 전 남자 친구에게 전화해서 왜 그랬냐고 묻는다던지, 알코올 중독자처럼 일주일 내내 술을 마신다던지, 그러고도 또 술을 마시고 싶다던지.
그렇게 영문도 모르는 시간들이 흘러가고 밤 산책을 나간 어느 날. 항상 걷던 마포대교를 걷는 보통의 날에 문득 든 생각.
‘아, 이렇게 우울하고 재미없는 삶을 계속 사는 것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이 반짝 빛난다면 여기까지가 가장 가치 있는 삶이 아닐까.’
평소 같았으면 아니! 세상에는 재미있는 일들이 더 많아서 다 해볼 거야!-라고 넘겨버렸을 텐데, 출렁거리는 짙은 검정의 우울에 허우적거리며 고민했다. 내가 나를 더 빛나게 할 수 있을지. 오만가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표현이 딱 맞도록 오만가지를 생각을 했다. 직업을 바꿀까? 남자를 만나볼까? 여행을 떠나볼까? 돈을 써볼까? 드라이브를 떠나볼까? 정말 신기한 것은 오만가지 생각 중에 답이 없었다는 것이다.
한 시간 남짓 생각했을까. 정신을 차리고 집에 돌아와 바로 심리 상담을 신청했다. 답은 없었지만 나다운 내가 그리웠기 때문에, 한 번 더 해보고 싶어서. 내가 20대를 즐겁게 말할 수 있듯 30대도 즐겁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서.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우울과는 다른 우울. 가장 심각했던 것은 왜 우울한지 모르겠는 나의 마음과 하고 싶은 일이 아무것도 없는 나의 감정, 그리고 그것을 극복할 시도조차 하지 않는 나의 태도였다.
글루드 글루미는 삶에 착 붙어버린 나의 우울에 대한 정말 막막했던 나날들, 그리고 괜찮아지기를 바랐던 무던한 노력의 기록이다. 누군가는 이 우울에 공감할 수도, 한심하다고 생각할 수도, 걱정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이 우울이 나에게는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가치 있는 우울이기에 그것으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