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명을 만드는 설레는 시간

어울리는 필명이 나에게 올 때까지 기다리는 설렘이었을까?

by 어영

현영, 현영이, 영, 영이, 횬용, 혀녕, 효뇽, 횬용, 며녕, 묘뇽, 뇽뇽 …

나를 부르는 별명은 이렇게 많은데 왜 내 마음에 드는 필명은 없을까?


브런치 작가 심사를 통과하고, 약 2주의 시간 동안 한 편의 글도 업로드하지 못했다. 축하는 많이 받았는데!

글을 업로드하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너무 바빠졌어!', '나는 너무 힘들어!'라고 투덜댔지만 사실은 마음에 드는 필명이 없어서였다. 어딘가 부족한 완벽주의자인 나는 무엇인가를 시작하면 포맷과 템플릿은 변경되면 안 돼!-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에게 변화가 발전일 수도 도전일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나에게는 그저 '허술함'으로 보이는 영역이었던 것이다. 내가 정한 아이덴티티를 내 감정에 따라 바꾼다면 구독자들에게 얼마나 혼란을 줄 수 있겠는가!


더욱이나 브런치는 나에게 (1) 작가명을 바꾸면 1달 동안 재변경할 수 없고 (2) URL을 바꾸면 이 또한 1달 동안 변경할 수 없으며 (3) 이전 글과 연동이 끊길 수 있고 (4) 이전에 작성한 글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라는 무시무시한 경고까지 했으니 말이다!

캡처.PNG 이제는 30일 동안 브런치 주소를 변경할 수 없다


여기에 생각지 못하게 또 다른 미션을 받았다.
출근 길마다 '밀리의 서재'를 활용하여 책을 읽는데, 그 당시 내가 읽고 있던 책은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라는 셀프 브랜딩에 관련된 도서였다. 해당 도서의 내용을 빌리자면,

'본캐 네이밍을 위해 내가 세운 조건은 이러했다.

- 온라인 서점에 등록된 동명인이 없는(또는 적은) 이름일 것

- 부르기 쉽고 쓰기에도 쉬운 이름일 것

- 본래의 나를 잃지 않는 이름일 것

- 향후 10년 이상 변하지 않고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이름일 것

- 오프라인에서 불릴 이름(검색어)과 온라인에서 쓰는 이름(검색 결과)을 일치시킬 수 있을 것

그리고, -많은 사람이 부르는 이름으로 통일할 것.'


그래, 내 필명은 내가 마음에 들 때까지 고민해야지. 이 일은 많은 글을 발행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다!

이 결론은 나만의 일관성에 대한 집념과 연관되어 글의 발행을 더디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 마음에 쏙 드는 필명을 찾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중간에 예전에 쓰던 '루봄'이라는 닉네임을 쓸까?라고 잠깐 생각했던 적도 있다. 루봄이라는 이름은 '바위 위에 피는 꽃'이라는 나의 사주에서 파생된 닉네임인데, '꽃/만개하다'이라는 의미의 'bloom'과, '붐/쾅하는 소리'의 'boom'(이 때는 boom이 바위를 뚫고 나온 꽃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을 합해서 만든 닉네임이었다. 하지만 필명으로 오래 간직하기에는 정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날들은 흘러가고, 어느 날 J에게 카톡이 왔다. J는 항상 카톡을 보낼 때 '현여엉~'이라고 먼저 보낸다. 그날도 어김없이 '현여엉'이라고 카톡이 왔다.


'고민의 순간, J에게서 온 현여엉'


그 순간 '어, 여엉-으로 해볼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음, 사람들이 나를 '영'이라고 부르니까 연상도 쉽고, 내 본명과도 연관이 있고, 약간 귀여운 것 같기도...

아쉬운 점이라면 '여엉-'이라는 발음이 딱 떨어지는 느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여엉, 자꾸 발음하다 보면 여엉 아닌데!라는 부정적인 느낌의 접미사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이런저런 느낌으로 고민을 많이 했다.


고민에 비해 나의 사고는 단순했다.

그럼 여엉- 말고 어영-으로 해볼까? 뭔가 성이 '어', 이름이 '영'인 느낌으로. 그리고 나는 어영부영한 면도 없지 않아 있으니까 나름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오래 사용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발음도 나름 쉬운 것 같고, 외국인도 '어', '영', 두 글자는 쉽게 발음할 수 있을 것 같고! 무엇보다 '영'이 나를 연상시키기도 쉬우니까!


바로 번역기를 검색해 '어영'을 번역했다. 'eoyoung'로 표기되는 '어영'은 아쉽게도 인스타그램에 누군가가 사용했는지, 등록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어영'에 푹 빠져 있었다. eoyoung를 어떻게 하면 매력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찰나, 양 쪽을 똑같이 하면 더 매력적일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eee-oyo-ung'

앞에 e를 2개 더 붙였을 뿐인데 마음에 쏙 드는 아이디가 완성되었다. 신기하게도 인스타그램에도, 브런치에도, 구글에도, 네이버에도 내로라하는 대형 포털/SNS에 해당 아이디가 없는 것이었다. 생각할 것이 더 있겠는가, 바로 가입을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어영'이 되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어영'이라는 어감이 마음에 든다. 10년, 20년 후의 나에게 누군가 '어영 님! 책 잘 보고 있어요!'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조금 아쉬운 면이라면 의도했던 'ㅓㅓㅓ어영!'의 느낌보다는 'ㅔㅔ어영/ㅔㅔㅔㅗㅛ엉!'의 느낌이랄까?


작가의 길로 한 걸음. 이제는 어영이라는 작가의 길로 한 걸음. 앞으로의 내가 기대되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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