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가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실패를 한 순간을 말씀해 주세요'
현재 재직 중인 회사의 최종 면접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이 질문에 대하여 '저는 실패를 한 적이 없습니다. 실패를 하기에는 너무 짧은 인생이었으니까요. 다만, 힘들었던 또는 잘 되지 않았던 순간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라고 패기 있게 말했던 나였지만, 이것이 '나에게 실패란 없어! 그건 인정할 수 없어!'라는 나의 오만이라는 것을 얼마 전에 깨닫게 되었다.
2020년에 팀이 개편된다는 소문이 돌았고, 팀 내의 주니어 직급들은 다른 팀으로 옮기는 것을 결정했다(*우리 회사는 제도적으로 팀을 옮기는 것이 열려있는 편이다). 팀에서 가깝게 지냈던 K부팀장님과 Y수석님이 '너는 어떻게 하고 싶니?'라고 물었을 때, '저는 이 팀에서 후회 없을 만큼 끝까지 해보고 싶어요' 라는 답을 했고, 2021년이 시작되었다.
도전과 책임으로 가득했던 2021년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새로 맡은 고객사는 성향이 너무 달랐고 제안도 실행도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도 다 같이 하면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1분기를 지냈다.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고, 어느 순간 내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있었다. 다른 팀으로 간 동기는 예산이 몇 배나 되는 프로젝트를 척척 해내고, 또 다른 팀으로 간 선배님은 연간 매출을 상반기에 모두 달성하고도 추가 업무를 하고 있었다. 2분기가 끝나갈 즈음 내 선택에 후회를 했다. 주변에서는 '지금 그만두고 다른 방법을 찾아도 이상하지 않아' 라고 말했지만 '잘 모르겠어', '내가 조금 더 하면 되지 않을까?', '그래도 다들 나쁘지 않으신 분들이야'. 라는 이야기들을 했다. 뒤쳐지고 싶지도, 누구의 탓을 하며 타협하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마음들이 나를 더 괴롭혔다.
'내가 후회하지 않을 만큼 한다고 했는데, 다른 방법을 찾는 건 너무 책임감 없어!'
'내가 떠나면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어떡하지?'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사람으로 느껴지면 어쩌지?'
하루하루가 지날 수록 일에 대한 설렘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힘들어하는 나에게 Y가 [코난 오브라이언 다트머스 대학교 축사] 영상을 보내주었다.
https://youtu.be/q-WRUNCdGfk?t=1254
It is failure to become our perceived ideal that ultimately defines us and makes us unique. It's not easy, but if you accept your misfortune and handle it right, your perceived failure can become a catalyst for profound re-invention.
이상향에 도달하는 것에 실패함으로써 우리는 결국 스스로가 누구인지 정의하게 되고 그 실패가 우리를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쉽지 않겠지만 그 실패를 받아들이고 잘 다루기만 한다면 실패는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3년차의 직원이 '내가 함께 이 팀을 바꿔보겠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나만의 꿈. 즉 이상향이었던 것이다. 이룰 수 없는 목표였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신입사원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커리어를 정리하였으며, 얼마나 내가 노력을 했는지, 그리고 어떤 팀으로 가야 더 잘 할 수 있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지금 여기에 어울리는지, 이 일은 나에게 잘 맞는지, 내가 더 잘 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인지, 내가 어떻게 하면 다른 곳에서 필요할지 … 그리고 '내가 지금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다양한 관점에서 나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팀을 옮겼고, 내가 우려했던 생각들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신나게 회사를 다니고 있다. 그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조차 할 수 없었던 코난 오브라이언의 축사가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이 일이 또 다른 기회가 될 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후회는 없기를 바랄 뿐.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내 실패를 인정할 수 없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힘들어 하고 슬퍼하고, 그 힘듦과 슬픔이 미화될 만큼의 성공이 뒤따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