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세이 Sep 03. 2023

애아빠가 화가 났다.

애엄마도 말릴 생각이 없다.

"집회 같은 거 가지 마라. 근처에도 가지 마라."

아빠는 시절이 하 수상할 때마다 말씀하셨다.


"응, 안 가지."

나는 번번이 거짓말을 했다.


서이초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에도, 말도 안 되는 교육계 현실을 처음 접하신 후에도 아빠는 말씀하셨다.

"집회 같은 데 가지 마라."


그럼 난 또 거짓말을 했다.

"응, 안 가."


그 후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되어가도록,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아이를 가르쳐 본 적 없는 교육계 수장은 말도 안 되는 땜질식 대책을 내어놓았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학교를 다닌 게 전부인 사람이 2023년의 교육계를 틀어쥐고 있다.

아니, 틀어막고 있다.


돌려 돌려 돌림판에 50만 교원의 이름을 적어놓고

뱅글뱅글 돌려서 당첨된 교사에게 교육부 장관의 자리를 내어주기만 했어도

저런 똥볼은 차지 않았을 텐데.


수십 년째 평화로운 짱구네 떡잎유치원 해바라기반도 이끌어나가지 못할 사람이

나라의 교육정책을 짜고 있으니

입을 열 때마다



어이고 또 엉뚱한 소리나 하고 있네

싶다.


위정자의 무지는 죄인데, 왜 단죄받지 않는지 궁금한 나날들이 이어졌다.



며칠 전에 아빠와 통화를 했다.

9월 4일에 공교육을 멈추게 하는 교사는 밥줄 끊길 각오를 하라는 엄포가 내려진 후였다.


"너도 9월 4일에 뭐, 멈춤 그런 거 하냐."

아빠는 심각하게 물었다.


"멈추고 말고 할 게 뭐 있어. 별일 없으면 당연히 출근하는 거고, 아프면 당연히 병가 쓰고 쉬는 거지."

이번엔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건 일하는 사람들의 당연한 원칙이니까.


그럼에도 아빠는 혹여나 실직할지도 모를 딸을 걱정할 거였으니

나는 이제 '그날 잘못(?) 아프면 잘릴 수도 있으니, 그날만큼은 아파도 출근해라.'라는 말을 들을 차례였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아빠는 분개하며 말씀하셨다.


"해, 해라. 할 수 있는 건 다 해!"


헐.

아빠는 태어나 처음으로, 나에게 저항을 허락했다.

허락이 아니라 명령처럼 느껴졌다.


너무 많은 동료를 잃어, 이제 한 번에 한 명을 추모하기도 힘든 나날들.


언젠가부터 밥 먹었냐는 인사 대신,

너는 별일 없지? 괜찮은 거지? 를 수시로 묻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아빠.


어쩌다 자식의 목숨을 걱정하기 시작한 내 아빠가

진짜 화가 나고 만 거다.


엄마도 딱히 말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교육부 장관에게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리나니,

사실 나도 우리 부모님의 귀한 애다.


그리고

우리 아빠도 진짜로 화가 났다.




+) 물론 저는 아프지 않으면 정상출근할 예정입니다. 건강 만세~!




쨍쨍했던 그날의 무지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